空階下鳥雀  빈 섬돌 아래에 참새 떼가 내려앉고
無事晝掩門  아무 일이 없어 한 낮에도 문을 닫네
靜中觀物理  고요하게 세상 만물의 이치를 살피니
居室一乾坤  내가 사는 집이 바로 우주가 아닌가

'빈 섬돌(空階)'- 허목(許穆 1595-1682 조선 후기의 학자)

허목의 본관은 양천, 호는 미수(眉수), 남인으로 17세기 후반에 국상 중의 상복 문제로 두 번의 예송(禮訟)을 지휘하면서 임금의 권한을 강화하는 정치와 사회개혁을 주장하였다.

남인의 우두머리 허목은 노론 정권에 불만이 깊어서 김시습이나 정렴처럼 산림에 자취를 숨겼으나 만년에 국왕에게 초빙되어 노론의 영수이며 왕권을 성리학에 두려던 송시열과 강경하게 맞섰다. 그것은 허목이 고체인 전서체의 글씨를 이상으로 삼은 것처럼 유교 경전의 새로운 해석에 치중한 주자학보다 초기 경전으로 되돌아갈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조의 계비인 조대비의 복상 문제로 서인이 실각하고 3년간 상복을 입자는 남인이 집권하자 허목은 대사헌에 특진되고 우의정에 올라서 유배 중이던 송시열의 처벌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 뒤 영의정 허적의 전횡을 맹렬히 비난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이듬해 남인이 실각하고 서인이 집권하자 관작을 삭탈당하고 고향에서 저술과 후진교육에 힘썼다.

위 시는 풀 한 포기 속에 우주가 깃들어 있다는 유학자의 심성론(心性論)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하지만 예절을 숭상한 공자가 상복문제로 원수가 되던 조선의 유학자들을 보았으면 뭐라 평가하였을지 궁금하다. 그래도 입춘이 지났으니 희망을 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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