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남 교도·서울교당(논설위원)
안팎으로 민주주의가 화두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나라는 시끄럽다. 책임져야 하는 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물 타기에 바쁘다. 이마저 익숙한 모습이다. 정의롭지 못함을 용인하고 수용을 강요당하는 불편한 익숙함이 그저 불쾌할 뿐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근간을 뿌리 채 흔드는 사건이다. 민주주의의 핵심 중의 하나는 선거다. 총칼로 정권을 탈취하는 야만을 청산하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가능케 한다. 그래서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 한다. 국민 모두가 대등한 투표권을 행사하여 다수결로 뽑는 원리를 채택하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때문에 선거에서 공정한 규칙을 정하고 이를 담보하는 것은 중요하고 이를 위해 정부기관과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이 요구된다.

잘못 벌어진 일은 바로 잡으면 될 일이다. 책임자를 발본색원하고 제도를 보완하면 된다. 이마저도 못한다면 될 때까지 더 노력하면 된다. 다만 우리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도적 정비 또는 완비가 곧 가치의 완벽한 실현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실현을 위한 끊임없는 우리의 감시와 개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헌법이 개정되어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고 인권이 신장된 것으로 우리의 민주주의가 완벽하게 실현된 것으로 오인하고 방관한다면 언제든지 유사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리고 더 큰 과제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절차적·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교단은 최근 교헌 개정을 위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간의 각계의 요구가 있었고 최근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여론이 성숙되었으며 원불교 100년을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리더십의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최근 교헌 개정 논의는 조항을 검토하는 수준이 아니고 교단의 큰 틀을 다시 짜는 형태로 진행 중이다. 쉽게 말하면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의 개헌에 준하는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개정의 목표가 일원세계 건설 성공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니 교헌개정특위 활동에 귀추가 주목된다.

교헌개정 과정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치주의는 법에 근거한 통치로써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나 법의 구체적 내용을 결정짓고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은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교헌개정의 과정에는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우선 교단의 재가 출가 교도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교헌개정의 구체적 내용과 절차가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청회, 설명회 등을 통해 모든 재가 출가 교도에게 충분한 의견수렴의 기회를 제공하여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대중은 충분히 현명하며, 의견수렴의 과정을 통해 교헌개정안은 더 완벽해 질 수 있다. 개정안을 만들고 형식적인 의견수렴을 거쳐서는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렇게 중요한 일에는 구성원 각자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수결의 절차보다는 합의(consensus)에 이르는 즉, 반대의견이 없는 고도의 합의수준에 이르러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적극적인 의견수렴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교헌 개정의 구체적 방향에도 민주주의 원리가 실현되어야 한다. 교단 내 입법, 행정, 사법적 기능을 담당하는 부서의 권한을 엄격하게 분리하고 서로를 견제하여 궁극적으로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함과 동시에, 교법과 교단의 문화적 특수성을 충분히 반영하면서도 폐쇄성을 극복하고 다수의 다수 참여가 의사결정에 제도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유연한 조직적 틀을 갖추어야 한다.

세속사회와 종교계는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같다. 세속사회와 종교계의 개별 구성원이 동일하며 이들의 삶의 문제에 대한 화두가 주요 이슈가 된다는 점이 그렇다. 역사적으로 종교계가 세속사회에 화두를 던지며 선도하기도 하고 역으로 세속사회의 흐름이 종교계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두 영역의 변증법적 소통을 통해 끊임없이 발전해 온 것이다. 이제 교단은 세속사회의 민주주의 원리를 교단 운영 체계에 확대 반영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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