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째 대치중, 4개면 주민 삶 피폐로 치닫다

▲ 대책위 시민상황실 현황판에는 밀양 송전철탑이 설치될 4개 마을 주민들이 의지를 표명한 사진이 걸려있다.
경남 밀양시 4개면에 걸쳐 건설될 예정인 76만5천 킬로볼트(kV)의 고압 송전선 및 송전탑의 위치를 두고 8년째 한국전력과 4개면 주민이 대치중이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이제 밀양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인 문제가 됐다. 민주통합당 조경태 국회의원은 "밀양송전탑문제의 해결이 향후 우리나라 송전탑 건설 문제 해결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밀양 송전탑 문제를 두고 반대운동을 해 가는 과정에서 이치우·유한숙 어르신의 사망도 있었다.

이번 기획기사에서는 밀양송전철탑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4개면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주민들의 생활과 마음고생의 내용을 들어봤다.

고 유한숙 어르신 분향소 설치 여정

6일 오후1시, 밀양 76만5천kV 송전탑 반대 시민상황실을 방문했다. 삼문동에 위치한 시민상황실은 한산했다. 각종 리플렛과 게시판, 준비된 피켓 등을 보면 한눈에 시민상황실임을 알 수 있었다.

안내 요원을 따라 시민분향소로 이동했다. 밀양시 남천강변로 3길 영남루 맞은편 왼쪽에 위치한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이다. 고인은 지난해 12월2일 농약을 마셨다. 그리고 4일 뒤 유명을 달리했다. 향 하나를 사르고 예를 올렸다. 차분한 가운데 침착한 기운이 느껴진다.

상주 유동환 씨는 '조문객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아버지는 765송전탑 때문에 살기 싫어서 약 먹고 죽으려했다"는 "마지막 유언을 부산대병원 응급실에서 형사들에게 말했다. 휴대폰에 녹음이 되어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상주 유 씨의 억울함은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에서부터 시작됐다. 사인을 왜곡했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은 고 유한숙 씨의 죽음에 대해 '음주, 가정불화, 신변비관, 부채 등 복합적 원인으로 인한 음독자살'로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상주 유 씨는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부친의 사인에 대해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고 유한숙 영가의 발인식은 아직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언제 편안하게 발인을 할지 미지수인채 병원 영안실에 안치되어 있다.

분향소를 지키던 구미현(65) 어르신은 "1월27일 밀양시청 앞 광장에서의 사건을 잊을 수가 없다"며 "어떻게 억울하게 죽어간 한 시민의 분향소 설치를 그렇게 막을 수 있는가. 마치 우리를 폭동 진압하듯 무차별하게 대했다. 그 수모와 비참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고 혀를 내 찼다. 주민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밀양시장과 타협을 한 결과 남천강변에 시민분향소를 차릴 수 있었던 것이다.
▲ 고 유한숙 어르신 분향소를 지키는 고준길 씨.
노후 삶이 온통 무너져

시민분향소는 단장면, 산외면, 상동면, 부북면 주민들이 순번을 정해 지키고 있다. 단장면 용회동 주민인 고준길(71) 어르신은 "벌써 8년째 투쟁중이다. 주민들 생업하면서 송전탑 막는 일 힘들다"며 "한전에서는 농번기나 추수기에 공사를 다시 시작하곤 한다. 바쁜 농사철에 공사를 재개하면 주민들이 반대운동을 못할 것이라는 계산이 아니겠느냐"는 주민들의 힘든 상황을 밝혔다.

주민들이 전답을 팔고 이주를 하려해도 살 사람도 없거니와 보상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한 가구당 평균 4백만원을 보상해 준다는 말이 있었다. 그것도 송전탑과 거리가 얼마인가에 따라 보상액이 달라진다. 우리 마을은 가구당 2백만원이 보상액의 전부이다"고 속 사정을 털어놓았다.

송전탑이 설치된 고향에서 살지 않으려면 2백~4백만원만 받고 떠나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그야말로 맨손으로 노후생활을 해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는 "자기 생존권이 달린 문제가 됐다. 목숨을 내 놓고 싸우는 절박한 싸움이다"고 강조했다.

구미현 어르신은 "주민들 대부분이 70대 이상이다. 이런 노인들과 젊은 경찰병력과 싸우고 있다. 주민들보다 항상 10배 이상 인력이 동원돼 저지당하고 있다. 싸움이 안된다. 젊은 경찰하고 노인들하고 싸우면 지는 것은 노인들이다. 한 번씩 대치 상황이 될 때만다 119에 실려 간 어르신은 100명 이상이 된다"며 "외롭게 싸우고 있다"는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밀양시 단장면 바드리마을에 대해 설명했다. 바드리마을은 경치로 먹고 사는 곳이다. 양산에서 넘어오는 철탑 10개가 들어섰다. 10여 가구 주민 모두가 어르신들이다. 처음에는 반대를 같이 하다가 항복을 했다. 그런 곳에 거대한 철탑이 들어섰다. 참 흉물처럼 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 자연이 피폐해 져 가고 있다. 사람은 불평불만이라도 할 수 있지만 나무와 짐승들은 할 말도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주민들 우울증·스트레스 위험군

동화전마을 양상용(74) 어르신의 밤나무 밭은 철탑이 들어설 경우 항공방제가 불가능하다. 임야자체를 못쓰게 되지만 보상금은 154만원에 불과하다. 그는 탄원서에서 "얼마전 한전에서 전화가 왔다. 보상금 154만원을 찾아가라고 하기에 난 필요없다. 안받을 테니 우리 부부 늙어 죽을 때까지 먹여 살려 달라. 우린 그 땅 없으면 굶어 죽는다"고 고함을 질렀다. 5년 전 그 땅을 1억5천만원에 팔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미뤘다. 힘들어도 내 손으로 밤농사를 지으면 여생을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송전탑 설치의 인근 4개면 주민들은 자산가치의 하락 및 재산권 행사 불가, 자영업 피해 등 심리적 고통을 말로 다 할수 없는 실정이다.

구미현 어르신은 주민들의 건강상태에 대해서 "인도주의실천의사회에서는 4개면 민들의 건강상태를 지난해 5월과 연말에 2차례 검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스트레스와 우울증지수가 5월보다 배로 증가했다. 주민들은 죽고 싶다거나 자살하고 싶은 상황이다. 80%가 위험군에 속해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하루 이틀 끝날 문제가 아니다. 정신을 추스르지 않으면 바로 무너지고 말 상황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같이 살아가는 방법인지 모색하고 있다. 연대하는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며 "가장 적극적 연대는 그 분들이 마을에 들어와서 같이 생활을 하는 것이다. 장기적 계획을 가져야 할 상황이다"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 놓았다.

싸락눈이 간간이 떨어지는 해질녘. 상동면 도곡리 아랫도곡마을과 윗도곡 마을을 방문했다. 좁은 길을 따라 가는 길에 교대하는 경찰 버스를 만났다. 떫은 감을 생산하는 윗도곡마을의 경치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조용한 마을에 경찰버스가 주차돼 있고 길목에는 경찰4명이 조를 이뤄 서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70∼80세 어르신들은 "다 늙어 에너지 정책을 공부하고 있다"며 핵발전소 에너지를 빌리지 않고도 가능한 선진국형 에너지 정책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름답고 평화롭게 마무리 되어야 할 어르신들 노년의 삶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어둠이 내리는 윗도곡마을. 무거운 발걸음이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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