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 한 일터의 심경으로

▲ 김성철 교도/개봉교당
혜산세무회계
내가 대산종사를 처음 가까이서 뵌 것은 원기57년(1972년) 가을로 기억 된다. 원불교 교역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부모님과 함께 총부 종법실로 대산종사를 배알할 기회가 있었다. 영광교당 지부장과 백수면장을 지내셨던 아버님 덕에 종법사님을 가까이서 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나 싶다.

원기58년(1973년) 교학과에 입학해서 출가의 꿈을 키워가다 그해 9월 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원기61년(1976년) 8월에 제대 후 종로교당에서 숙식을 하면서 교학과에 복학할 날을 기다리며 준비했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연로한 부모님과 극도로 피폐해진 곤궁한 집안 형편이 나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별다른 마장이 없이 순탄하게 출가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전생에 많은 복을 쌓아야 가능 한 일이라는 것을 그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누군들 일생을 살면서 넘어야 할 마장이 없을 수 없는데 마땅히 그 어려움을 극복 할 수 있는 용기와 인내심이 나에게는 너무나 부족했던 것이리라.

결국 동생과 함께 그 해 국세청에 입사 시험을 치르게 되었고 다행히 같이 합격이 되어 1977년 3월 공무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집안형편이 어느 정도 회복 될 때까지라는 단서를 생각 하면서 말이다.

뜻하지 않은 환경을 접하게 되면서 한 가지 풀리지 않은 고민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5년 전 대산종사님과의 약속을 미루게 된 죄책감이 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언젠가는 멀리서나마 뵙고 이렇게 된 사연을 마음속으로라도 여쭈어야지 하는 숙제를 안고 살아갔다.

원기63년 1월초에 신년인사 겸 멀리에서나마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전해야지 싶어 대산종사님이 계시는 신도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도리이고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게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대전역에 내리니 무릎까지 쌓인 눈이 신도안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 모든 대중교통이 끊겨 서울로 되돌아오려고 표를 알아보고 있는데 멀리서 택시 기사의 외침이 들린다. "신도안에 가실 분! 신도안에 가실 분!" 돌아가신 아버님 첫번째 기일을 맞아 집으로 간다는 기사와 함께 어렵사리 신도안에 도착했다.

이윽고 인도 해주는 교무님의 뒤를 따라 종법사님의 접견실에 당도 했는데 '이런! 날씨 때문인지 나 외에는 신년인사를 드리러 온 분들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당황스럽고 초조한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리니 대산종사께서 접견실로 들어오셨다. 황급히 대례를 올리고 무릎을 꿇었다.

한참을 지난 후 종법사께서 천천히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금 국세청에 다니고 있다고?" 하문 하신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간신히 "네" 라고 대답했다.

무슨 말이라도 올려야 되는데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고 머리 속이 하얗다. 이윽고 말씀하시기를 "국세청 일이나 우리 집 일이 둘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일해라!"하신 말씀을 뒤로하고 신도안을 떠났다.

어찌 됐건 돌아오는 발길은 가볍다. "그 눈길을 무릅쓰고 내가 다녀오기를 잘 했구나"라는 생각에! 일생을 살면서 내가 나에게 칭찬해줄 수 있는 일도 몇 번 되지 않는다. 나는 내게 처음으로 칭찬해 줄 수 있는 일을 한 것만 같았다.

대산종사님과의 짧은 만남이었으나 그때 주신 말씀과 그 기운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를 지탱해준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비록 출가의 길을 가지는 못하였지만 후회 없는 재가교도의 길을 가느라 나름 노력하고 35여 년을 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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