到地無南雪  군위현에 이르니 남녘의 눈 다 녹아
掀天有北風  하늘이 치켜 들리고 북풍이 일어난다
斜陽驢背興  기우는 햇볕은 당나귀 등에 일어나니
不羨灞橋翁  파교의 노인이 조금도 부럽지 않도다


'군위현을 보면서(省覲軍威縣)'-남용익(南龍翼 1628-1692 조선후기의 문신)

남용익의 본관은 의령, 호는 호곡(壺谷), 효종 때 대제학으로서 문장과 글씨가 뛰어났으며 역대 시선집 '기아(箕雅)', '부상록(扶桑錄)', 개인 시문집인 '호곡집'이 전한다.

남용익은 집권층의 위세를 자랑하는 관인문학(官人文學)을 정비하려고 시선집(詩選集)을 편찬하였는데, 시의 품격(品格)을 가장 중요시하였다. 고려와 조선의 시를 다룬 '호곡시화(壺谷詩話)'에서는 박은, 권필, 정두경의 시가 조격(調格)이 뛰어나고, 정경(情境)이 조화롭고, 체제(體制)가 기발하다고 평하였다.

'군위현을 보면서'는 절제된 정서를 은근하게 표현하여 품격을 세운 작품으로서 '당나귀 등에서 햇빛이 기운다' 같은 참신한 표현이 돋보인다. 하지만 서인인 남용익은 1689년 숙종이 장희빈의 아들을 세자로 삼으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명천에 유배당하여 그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었다.

'사교길에서(沙橋道中)'라는 다음 시는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노스님을 통하여 남용익의 유랑의식이 암시되어 애처롭기까지 하다. 암울했던 구시대로 회귀하는 이 세상도 우수가 지나면 반드시 봄이 찾아오는 자연의 이치처럼 이윽고 제대로 순환되리니.

靑蒻綠蓑翁 푸른 돗자리 녹색 도롱이 걸친 노인
騎牛向何處 소를 타고 어디로 향하시는가
南橋雪半消 남교의 눈이 반쯤 녹았으니
欲訪新菴去 새로운 암자 찾아 떠나고 싶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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