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익선 교무/원불교사상연구원
최근 교헌개정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교헌개정 전문위원으로서 참고삼아 한국, 일본, 대만의 여러 불교계 종단의 종헌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이들 종헌들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것은 종조의 종교적인 세계관을 어떻게 견지하며, 실정법을 통해 어떻게 유지·계승할 것인가가 핵심임을 알게 되었다. 예들 들어 법주(法主), 문주(門主), 종정(宗正) 등으로 표현되는 법의 계승자의 위치와 실질적으로 교정 혹은 종무를 책임지는 자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잘 드러나고 있다.

이들 불교계는 전자에게는 수행과 신앙, 혹은 종단 전통의 계승자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한편, 후자에게는 사회적으로 교단을 대표하는 동시에 실정법을 집행하고 책임지는 실질적인 자격을 분명히 해놓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전자는 재가출가가 귀의하여 의탁하는 부처님을 대리하는 최고의 인격적 존재로 받드는 한편, 후자에게는 대중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교단을 운영해 가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불교는 어떠할까. 합리적인 교단을 표방하며 5차에 걸친 교헌 개정을 해온 역사도 넓은 의미에서 이와 다름이 없다. 단 수위단회가 그러한 양자의 갈등을 포용하며 점점 그 기능을 확장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사이 교단의 양적 질적인 변화는 일어났는가. 한국사회나 세계가 처한 문제에 시기상응(時機相應)의 철학으로 잘 대처해 왔을까. 솔직히 현실은 그렇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어디에 있을까. 이 문제는 수위단으로 대표되는 교단 전 구성원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수위단을 우리의 손으로 뽑아 우리의 의사를 대변하도록 권한 위임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을 나누어 짊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각자 위법망구 위공망사의 대의 앞에 얼마나 충실히 살아왔는가 하는 점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자는 법의 이중적 표현인 Dharma와 Law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00년 전 소태산 대종사가 교단을 창건하면서 내건 것은 '불일증휘 법륜상전'이었다. 세속의 어떠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마지막으로 귀의하여 의탁할 곳은 불법인 것이다. 이를 위해 Dharma로 표현되는 종교 정신을 어떻게 개인과 교단의 수행과 신앙의 체계 속에 녹여낼 것인가가 원불교 교헌의 제1의제인 것이다. 사실 2천5백 년 동안 종헌이니 교헌이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그에 대응하는 것을 끄집어낸다면 율장에 해당할 것이다.

여러 불교계 종단이 종헌종법보다도 심혈을 기울여 수행위계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교헌은 전문가 몇 사람이 모여 세상의 좋은 법을 모범으로 개정해 가면 된다. 그러나 교조의 대각의 정신을, 더욱이 배워야 될 것도 가르쳐야 될 것도 부처님의 도덕이라고 말씀하신 명제를 어떻게 실천해 갈 것인가는 세속적인 법률로 다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로라하는 헌법학자들이 참여해 만든 헌법도 그것을 실천해가는 국민의 깨인 의식이 없으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Dharma를 계승하고 실천하는 내면의 교헌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Law는 이러한 정신을 구체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Dharma에 대한 살신성인의 자세는 강제할 수는 없으며, 최소한의 요청일 뿐이다.

교헌개정은 이미 대종경 서품을 통해 제시된 Dharma의 정신을 시대화하는 것이며, 우리의 내면을 다시금 불태우는 작업이다. 주종을 바르게 세우는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교단 2세기의 진정한 출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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