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 독립투사에서
전무출신으로, 변중선 선진

▲ 군산시민들이 구암동산에서 3·1독립만세운동을 재현하며 순국선열을 추모했다.
한 교도가 정산종사에게 물었다. "기미년 만세 운동 때 대종사께서 시국에 대하여 특별히 하신 말씀은 없었나이까." 정산종사는 "개벽을 재촉하는 상두 소리니 바쁘다 어서 방언(防堰) 마치고 기도드리자 하셨나니라"고 밝혔다.

우연한 일일까. 교단의 재가 4개 단체를 중심으로 13개 교구가 7년여 동안 3월1일이면 일원가족 산상기도를 전국에서 거행한다. 제2의 혈인 기도의 정신을 이어 받겠다는 원기100년을 향한 기도운동이다.

원기100년을 목전에 둔 교단은 이제 사회와 함께하는 정신운동을 펼쳐가야 할 때 이기도하다. 우리들만의 기도운동이 아님을, 사회적 이슈를 같이 담고 있는 기도임을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올해로 기미년 3·1절 독립만세운동이 95주년을 맞았다. 전국 해당지역에서는 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열렸다.
익산과 가까운 군산에서도 3·5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군산 3·1운동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렸다. 군산의 3·5독립만세운동은 3월5일 발원되어 총 28회에 걸쳐 연인원 30,700명 참가, 사망 53명, 실종 72명, 피해인원 195명이 발생했다. 군산의 3·5독립만세운동은 호남 최초는 물론이고 한강 이남 최초의 거사로 기록되고 있다. 또 전북지역 최다수의 순국자가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군산구암교회 교인인 김병수 학생 에 의해 시작해 범종교와 시민 등이 함께 전개했다. 이러한 이유로 구암교회는 해마다 기념예배와 그림·글짓기 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3·5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에도 교인들 대다수가 적극 참여한다.

교단에서는 변중선(1903~1980) 선진이 독립투사였다. 전남 장성에서 출생한 변중선 선진은 휘문고보와 상해 동제대학 의학부 졸업한 후 청년시절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상해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했다. 신의주 감옥에서 수년간 옥고를 겪었다.

그는 8·15 광복 이후 귀국하여 교육계에 투신하여 서울대학·이리농과대학·전남대학 등에서 20여 년 간 교수로 봉직했다. 1965년(원기50)에 광주에서 입교, 1973년(원기58)부터 전무출신했다.

원광대학교 초대 한의과대학장의 책임을 맡아 한의대 설립과 발전에 크게 공헌한 선진이다.

대산종사는 변중선 선진에 대해 "독립투사로 이 교단에 전무출신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니 기록하여 전하도록 하라"고 법문 3집에 밝히고 있다.

이렇듯 참으로 자랑스러운 선진이 교단에도 존재했다는 것을 후진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3·1절이 되면 국가의 많은 독립유공자들과 더불어 변중선 선진과 김현관 선진을 추모하는 공도자 숭배의 정신을 계승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본다. 교단의 사회적 참여를 모색하는 새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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