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신이라야 법을 받는다"

교도에게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만 원하지 않게 화난 모습과 엉성한 모습도 보여줄 때가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일요일 아침에는 언제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교도들을 기다리게 된다.

'길이 꽁꽁 얼었는데 오시다가 혹여 미끄러지지 않을까? 찬바람에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지. 차라리 법회를 쉬자고 연락을 해야할까?'

교도의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런 날에는 여간 신경이 켜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우리 교도들의 꿋꿋하게 법회에 참석하는 모습에 난 늘 염려하다가 감동을 받곤 한다. 교무 혼자 어설퍼할까 더 특별히 살피는 교도들의 따뜻한 배려의 마음이다. 참으로 고맙고 소중한 법동지들이기에 늘 교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변함없는 신심이라야 법을 받는다고 했다. 한번 서원을 세웠으면 그 서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끝까지 믿고 나가는 것이 성공의 열쇠다. 구정선사가 추운 날에 스승의 명을 따라 아홉 번이나 솥을 바꿔 걸 때 솥을 바꿔 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번을 걸었어도 아홉 번을 바꿔 걸었어도 그 순간 스승의 말씀에 두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대종사께서 스승 찾아 헤맬 때 얼마나 간절하셨는지, 정산종사께서 대종사께 향하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하셨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간절함과 지극함으로 만난 스승이 나를 제도해준다. 초발심 서원은 스승을 향한 정성된 신으로 시작된다. 서원에 바탕한 신이라야 감응을 얻고 지극한 정성이라야 위력을 얻는 것 같다.

구정선사가 아무리 스승의 성품을 닮고자 하나 스승이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고 스승이 아무리 법을 전하고자 하나 그 법을 담을 그릇이 없다면 그것 또한 어려운 것이다. 스승과 제자사이에 어떤 분별도 주착심도 없는 무간한 사이에 정성을 다하는 신이라야 공부의 성공이 있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교도들이 저렇게 변함없는 신심을 보여주는 것도 결코 구정선사의 초심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법회를 마치면서 자신성업봉찬과 교화대불공을 삼창하는 교도들의 외침은 그래서 그대로 서원이 되고 신심이 된다. 교도들은 대부분이 나보다 연장자다. 그럼에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눈 맞추고 언제나 깍듯하게 대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교도들의 공부심 만큼이나 교당을 향한 마음도 깊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감사하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교도들에게 다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법을 구하는 것도 나고, 법을 찾는 것도 나이다. 깨달음을 얻는 것도 스승이 깨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스승을 통해 내가 깨닫는 것이라는 걸 알겠다.

부지런히 내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정성 앞에서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다. 보은한다는 생각마저도 없는 마음으로 그저 정성을 다하고 보면 어느 순간 나도 스승의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

<포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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