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하나,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하나의 세계'를 주창한 평화의 성자 대산종사가 태어난 탄생가를 새롭게 단장하고 봉고식을 가졌다. 그는 1914년(원기전 2년)에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서 태어났다. 마을 뒤엔 봉황이 살았다는 봉황산이 있고, 마을 앞에는 봉황의 알을 품고 있다는 아미산(卵山)이 병풍을 두른 듯 수려함을 자랑한다.

그의 부모는 결혼 후 10여년이 되도록 혈육을 얻지 못했다. 초조한 조모와 모친은 기도일을 정해 천지신명에 정성을 올린 5년 만에 첫딸을 얻고, 2년 뒤에 그가 태어났다. 모친의 태몽에 아미산 앞에 흐르는 시냇물이 큰 강물을 이루더니 중천에 뜬 달이 물위에 떨어져 집안에 광명이 가득했다. 그 달을 품고 싶어 치마로 세 번이나 안았다고 한다. 집안은 대대로 불교를 봉대하며 후한인정으로 마을에 덕화를 미쳤다. 또한 산골이었지만 일찍 신학문을 받아드린 개화한 가정에서 자랐다. 어릴적 꿈은 대포를 만들어 싸우는 나라가 싸울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대포를 만들 수 있는 산부처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만덕산 산제당에서 대종사를 친견했다. 이 만남으로 대포는 만들지 못했으나 세계평화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이 인연으로 16세에 정산종사를 연원으로 전무출신을 서원했다.

원기47년 1월31일 종법사위에 올라 원기79년 11월6일까지 33년간 재임 중에 교단을 반석위에 올려놓는 공적을 쌓았다. 재위 중 핵심과제는 대종사의 일원대도와 정산종사의 삼동윤리를 계승하여 실천하는 일이었다. 교단 내적으로는 천여래 만보살을 배출하기 위해 법위향상과 이단치교(以團治敎)에 심혈을 다했다. 이를 위해 훈련을 강조하며 각 지역에 훈련원을 세워 훈련에 공을 들였다. 대외적으로는 세계평화를 위한 삼대제언(심전계발 훈련, 공동시장 개척, 종교연합기구 창설)을 통해 구세교단의 걸음을 내딛게 했다. 이와 함께 인류의 균등한 생활에도 원력을 세워 사대봉공회 설립과 정교동심 실현에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하나의 세계, 평화의 세계, 균등의 세계, 대선경의 세계, 대낙원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일원주의 실현에 일생을 바쳤다.

탄생가 중수 봉고식을 기해 재가 출가가 대산종사의 거룩한 일생을 기리고, 대종사가 예견한 '사오백년 결복'을 앞당기며 일원대도가 편만한 평화의 세상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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