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쉬라고 해도 마음이 벌떡 일어나야 한다"

▲ 이양신 교무/ 지리산국제훈련원
이양신 교무가 대산종사를 처음 만난 것은 원기45년 일이다. "영산에 큰 어른이 계시니 찾아가 보라"는 좌산상사의 하명을 받들고 늦은 밤 선진포를 넘어 영산에 들어가게 됐다. 그날 대산종사는 이영훈 종사 수술관계로 아침 일찍 익산에 가야할 일이 있었지만 '누가 나를 만나러 올 사람이 있으니 못 갈 것 같다'며 하루 종일 사람을 기다렸는데 그가 바로 이 교무였다.

대산종사는 일과를 생명과 같이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그는 회고했다. 아무리 편찮으셔도 조실 방엔 새벽 4시면 불이 켜졌다. 식사를 안하셔도 시간이 되면 진지상을 올려야 했고, 밤에는 밝은 불이 아닌 작은 불을 켜며 이래야 정력이 소모가 덜 된다'고 했다. 새벽 5시, 방이 추워 불을 때고 있으면 '너 뭐하냐! 네가 좌선 안할려고 작정 했구나', 방이 차가워 감기 걸리실지언정 제자는 좌선을 하게 했다. 오전 10시, 약 드실 시간이라 탕제를 올리면 '지금 정전공부 시간인데 너 뭐하냐! 약은 미리 갖다 놓으면 된다. 네가 공부 안할려고 작정했구나' 꾸중하시며 식은 탕약을 개의치 않고 제자를 공부하게 했다. 언제나 시간을 정했으면 미리 미리 그 일을 처결해 놓고 일과를 지키도록 훈련시켰다"고 회고했다.

이 교무가 극심한 병고로 시름하고 있을 때 대산종사는 그를 원평으로 가라 했다. 대산종사는 "네가 원평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해야겠다. 어른 100명 교화하는 것보다 어린이 5명 교화하는 것이 더 큰일이다. 정산종사께서 남북통일이 되면 인재 1만명을 양성해야 한다고 했으니 네가 1천명을 만들어라. 대종사께서 정산종사에게 배운 구전심수를 나는 너한테 가르치니 너는 1천명한테 다 가르치라"며 인재양성을 강조했다.

한때 대산종사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째서 나만 따라 다니느냐?", "닮을려구요", "그럼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라 그래라",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어떤데요?", "손이 천개 눈이 천개가 아니라 다 좋게 봐주고 다 살려 주시니 그것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다"

특히 대산종사는 법위훈련을 강조했다. "나는 대종사를 16년간 모셨는데 법위등급을 밤마다 외우라고 하셨다. 농사를 비유하면 보통급은 종자를 뿌린 것이고, 특신급은 싹이 나는 탁근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보통급에서는 조석심고는 절대 빼먹지 말라. 어제 못했으면 오늘 그것까지 채워서 해야 한다. 10년, 20년, 30년 계속하되 사은에 보은하면서 해야 한다. 정신·육신·물질로 보은봉공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상전급은 몸과 마음이 싸우는 단계로 몸 따라 가면 지옥 가고 마음 따라 가면 극락 가니 몸이 쉬라고 해도 마음이 벌떡 일어나야 한다. 부지런한 공부이다. 항마위에서 가장 두려워 할 것이 중근병이다. 출가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원망하지 않고 내 책임 삼는 것이며 법을 위해서는 몸을 잊고, 공을 위해서 사를 버리는 심법이다. 또한 반드시 제도의 실적이 있어야 출가위에 오른다. 여래위는 조각내지 않는 것이다"고 하셨다.

그는 '대산종사찬가'를 대중과 함께 부르며 스승을 향한 그리움을 표했다. 현재 봉사중인 지리산국제훈련원에서 '선객이 오면 선객을 받고, 풀이 나면 풀을 뽑으며, 눈 많고 바람 세찬 그곳에서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보은하며 살겠다'고 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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