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는 세월이 흐르고
적공의 시간이 쌓여야

대산종사는 누구나 손잡아 주시고 함께 사진 찍어 주시며 대중과 함께 하신 큰 스승이시다. 나도 여러 번 그런 기회를 갖게 됐다.

영산선원에 입선한 원기61년 대산종사의 손을 잡고 선진포 나룻길을 걸으면서 "저는 공부가 잘 안됩니다"하고 여쭈니, "너 공부한지 몇 년 됐느냐?"하시는 것이다. "이제 1년 되었습니다", 대산종사께서는 영산선원 큰 소나무를 지팡이로 가르키시며 "너, 저 소나무에 가서 물어 보아라. 몇 년 컸냐고…."

대산종사는 내게 '마음공부는 세월이 흘러야 되고, 적공의 시간이 쌓여야 되며, 비·바람·눈 보라의 경계를 거쳐야 된다'는 깨침을 주셨다.

그 해 여름방학, 최세진 사감의 추천으로 대산종사가 계시는 신도안 삼동원 조실에 한달 간 근무하게 됐다. 당시 초가 3간 집으로 방 2칸 부엌 1칸이 고작이였다. 나는 청소와 식사를 담당했고 조실에 근무하는 교무들의 보조 심부름 역할을 맡았다.

간사근무를 하지 않아 원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던 철부지인 나에게도 대산종사는 "대종사께서 나에게 신발이 커서 안 맞아도 신발을 주셨다"며 융 잠옷 1벌과 내의 2장을 주셨다. 더욱 정성을 다해 진지상을 올리고 내오는 일을 하던 어느 날 대산종사께서 배탈이 나셨다. 아침 진지상을 내 오려고 들어가니 "음식 맛이 통 없다"고 하셨다. 그 당시 여름인지라 하지감자와 옥수수를 교대로 올려 드리고 있었다. 시봉진들이 점심식사는 옥수수를 올려 드리기로 결정하였고 나는 밭으로 나갔다.

나는 옥수수 밭에서 간절히 심고 올렸다. "법신불 사은이시여, 대산종사께서 배탈이 나시어 입맛이 없으시다 하십니다. 오늘 선택된 옥수수는 부처님이신 대산종사께 드릴 옥수수입니다. 옥수수가 제 맛을 내서 대산종사께서 맛있게 드시고 건강히 회복되게 해주세요"하는 심고를 올린 후 옥수수를 쪄서 점심 진지에 올려 드렸다. 식사 후 진지상을 내 올려고 들어가니 "오늘 점심은 다른 것은 맛은 모르겠고 옥수수만 제 맛이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후부터는 손님 접대시 음식을 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을 때 마다 스승께서 나에게 기도의 감응을 깨우쳐 주셨기에 그 힘으로 정성을 다했다.

원광제약사에 근무할 당시 왕궁 상사원으로 찾아 뵙고 "공단으로 제약사를 이전하여 공장을 새로 건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경옥고와 숙지황 등을 생산하며운전을 배워 직접 배달하고 다닙니다"고 보고 드리니 크게 기뻐하시면서 "너는 나보다 낫다"하시고 시간을 내시어 제약사를 차로 둘러 보시며 크게 힘 밀어 주셨다. 그렇게 제자를 키워주신 큰 스승이셨다.

대산종사께서는 재가 출가 교도들의 열반 소식을 들어 일일이 기도문에 영가들의 이름을 넣으시며 천도 기원에 정성을 다하셨다. 이영훈 종사께서 열반하신 후, 막내 며느리에게 아이를 더 낳으라고 권장한 나에게 손자를 본 후 조실에 가니 "네가 큰일 했다"고 하시는 것이다.

대산종사의 그 말씀을 받들고 열반 후 인연 찾아 사람 몸 받아 태어나게 해 주는 일이 큰일이 되는 줄을 알았고, 그 이후 천도재에 관심을 갖고 의식교화에도 정성을 들이게 됐다.

대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대법회를 앞두고 대산종사께서 "너 몇 년 공부했느냐?", "너는 나보다 낫다", "네가 큰 일 했다"하시며 한결 같이 믿어주시고, 이끌어 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온통 다 받아 주시고, 쏟아주신 스승님의 자비를 추억하며 그리움에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이는 스승께 보은의 도리를 못한 죄송한 마음에서일 것이다.

이제 다시금 대산종사를 닮아가는 제자로 큰 일하는 제자가 되어야 겠다는 서원을 법신불전에 올린다. 그리고 스승께서 주신 물음들을 마음에 품고 열심히 정진하는 제자이고 싶다.

<만경교당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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