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희원 교도/강남교당
논설위원
온 나라가 아직도 먹먹하다.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온 듯 하다가도, 한 없는 슬픔에 빠져들게 된다. 세월호 참사가 나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은 아직도 표류하고 있는 것만 같다.

원불교 교도들은 또 하나의 의문을 품게 된다. 모두가 은혜라고 배웠건만 이 참담한 사건 앞에서는 쉽게 '그렇다'라는 답이 안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대종사께서는 "이 나라가 정신적 방면으로는 장차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제일 가는 지도국이 될 것이다"고 말씀하셨고, 정산종사께서도 "이 나라가 전 생령의 정신적 부모국이 될 것을 저 태극기가 예시하고 있다"고 하셨다. 성자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우리가 세계 여러 나라의 정신의 지도국, 전 생령의 정신적 부모국이 되기 위해, 이 참기 힘든 역경 앞에서 지금 새겨야 할 마음의 표준은 무엇일까?

서너 살 어린아이를 엄마가 혼을 내면 무서운 마음에 그 앞에서는 엄마 말을 따를 수 있지만, 감사하다고 생각하지는 못 한다. 그렇기에, 엄마가 보지 않는 곳에서는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기도 한다. 이 나이의 아이들은 맛있는 것을 주거나, 칭찬을 해 주어야 감사하다는 마음이 생겨난다. 이 아이가 잘 자라서 부모님이 혼을 낼 때도 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면 우리는 그 때, 이 사람이 철이 들었다고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국민적 분노와 한탄을
원불교가 나서서 희망으로 전환시켜야

우리 사회는 진리로부터 아주 큰 혼이 났다. 유아기 정도의 성숙도를 가진 사회라면 왜 진리가 나를 벌했는가만 생각하여 서운하고 성난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성숙도는 이 진리의 꾸짖음을 받으며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겠다. 진리가 우리 사회에 무엇을 깨우쳐 주기 위해 이러한 벌을 내렸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철든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룩한 엄청난 물질적 풍요에만 감사하고 이런 꾸짖음을 은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여전히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사회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가 철든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누가 변해야 할까? 나를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 철든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언론에서는 나라의 지도자, 선장과 승무원, 해경과 공무원들을 질책하고 탓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물론 그들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책임을 다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혹시 그들을 비난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지 않나 되돌아볼 일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 국민들의 마음 속에는 평소 찾아볼 수 없었던 엄청난 에너지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 에너지들이 분노와 질책으로 흐르지 않고, 대희망과 화합을 위한 에너지로 전환되어 이 사회에 궁극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다른 누군가를 탓하는데 이 에너지를 쓰기 보다는, 바로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데 이 에너지를 써야 한다.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철학과 행동 양식을 되돌아 보며 철이 들 때, 우리 사회는 진정 철든 사회가 되어 갈 것이다.

그런데 사회 구성원 한 사람으로서 나를 돌아보고 성숙시키자는 작은 변화가 하나의 거대한 움직임이 되어 사회 전체의 정신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그 에너지를 모아줄 구심점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종교계가 해야 할 역할이고, 바로 우리 원불교가 해야 할 시대와 사회의 소명이다.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 한탄의 에너지를 자기반성에 바탕한 희망과 발전의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특히 실용종교를 표방하는 원불교는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온 국민의 마인드 셋을 새로이 하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정치권이 이런 일이 있음에도 제도를 정비하지 못 하면 용납될 수 없듯이, 우리 원불교 또한 이 일을 당하고도 국민들의 마음을 선도할 수 없다면 그 사명을 다하지 못 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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