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소명 교도 / 분당교당

어둠이 깊은 밤에 길을 잃었던 사람은, 멀리서 반짝이는 등불을 보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등불에 의지하고 한 발 한 발 내딛어갈 때, 그의 가슴은 이제 살았다고 희망으로 고동쳤을 것이며, 그 등불에 대한 감사의 기도로 호흡은 뜨거웠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도 소망이 있었다. 교구에서 진행하는 예비단장훈련에 참석할 때는 내가 꿈꾸는 교화단 활동의 첫 번째 칸에 늘 '공부하는 교화단'을 적었었다.

모든 단원들이 상시일기를 50% 이상 기재할 수 있다면, 그 속에서 조석심고, 기도, 선, 염불, 경전 연마, 유무념공부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모든 단원들이 정기일기를 통해 감각감상과 심신작용처리건을 기재한다면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대종사께서 바라는 대로 물샐 틈 없이 공부하는 공부인이 될 것이라는 꿈이 있었다, 지금도 있다.

나는 단장이 되었고, 현재 우리 단은 단회 때 상시일기 기재, 정기일기 기재와 발표, 법어 봉독 등을 주요활동으로 하고 있다. 물론 우리 모두가 그 결실을 벌써 본 것은 아니다. 시작점에서 나란히 각자 편한대로 서서 첫 단추들을 채우는 중이다. 나는 단원들을 돌아보며 내가 앞으로의 3년 동안 단원들에게 신심 공심 공부심의 물꼬를 터줄 수 있는지 고민한다.

슬쩍 고개 돌리며 구속이나 강요로 느껴져서 튕겨져 나가는 인연이 생기면 안 될 텐데 걱정한다.

다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 등불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 깜짝 놀란 것은 등불을 들고 걷는 이가 장님이었기 때문이다. 장님은 말한다. 내가 여기 걷고 있음을 누군가는 알 것이라고. 혹자는 장님이지만 주변을 밝히는 등불에 감탄할 것이고, 혹자는 자기 자신이 장님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며, 혹자는 그 장님의 자각 없는 행동을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장님의 목소리를 그렇게 듣는다. 내가 여기 걷고 있음을 누군가는 알 것이라고.

소태산대종사께서 최초의 교화단을 만들고, 단장에 대종사가 자리했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에게 그만한 지혜가 있는가, 삼대력이 있는가, 지도력이 있는가 따지면 누구도 단장 자리에 선뜻 서기가 두려워질 것이다.

이 법을 만나 이 법을 알았으니
나에게는 이 법을 실천해 갈 사명이 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교도가 과거의 단장, 현재의 단장, 미래의 단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단장이 아닐 때도 단장일 때도 내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내 공부다.

이 법을 만나 이 법을 알았으니, 이 법을 실천해 갈 사명이 있다. 왜냐하면 나는 제중을 하기 전에 자신을 제도하고, 기질 변화를 통해 자신 스스로의 일원화를 피워야 하므로. 그것은 원불교 교도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내 생명에 대한 의지며, 감사의 기도며, 제일 귀중한 서원이다.

요즘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마음이 매우 착잡하다. 나뿐만 아니라 국민들 대부분이 부모된 사람으로 이 큰 슬픔에 전도되며 이 나라 안팎을 제대로 정비해 오지 못했음을 통탄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내 직위에서 맡은 바 직분을 다해야 할 때다.

우리가 원불교 교도로서 할 일도 마찬가지다. 내가 나의 공부를 책임지고 수행 정진해야 내 삶이 바르고 행복하게 이루어지고, 내 곁의 법동지들도 그 힘을 타서 저마다 대정진 대적공을 해나갈 것이다.

그런데, 내가 들고 가는 이 등불은 무엇인지? 비밀을 속삭여보자면, 지금 내 손에는 수양력, 연구력, 취사력으로 스승들께서 만들어준 심지가 타고 있다.

이것이 다 타기 전에 나도 내 스스로 심지를 튼튼히 꼬아야 한다. 내가 가지고 갈 것은 그것, 내가 누군가에게 줄 것도 바로 그것, 삼대력의 심지다.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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