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관응 교무/신현교당
논설위원

한 통의 전화, 한 줄의 글, 한 마디 말을 통해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거기서 풍겨져 나오는 에너지가 세포를 춤추게 한다. 짧지만 축복의 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시간과 공간을 떠나 있음을 체험한다. 그래서 그 기쁨을 곱씹게 된다.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을 스스로 즐기는 것이다.

며칠 전 저녁에 한 선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일상적인 안부 전화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마무리 말이 심금을 울렸다.

"지금 그 자리에서 기쁘고 즐겁고 보람있게 살자."

어떻게 보면 평범한 말 같지만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무수한 상념들이 형상화 되어 필름처럼 지나갔다. 반복되어 지는 희로애락애오욕이 그 속에 있었다.

기쁨·성냄·근심·즐거움·사랑·미움·욕심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 속에서 헤엄치고 있음을 알았다. 이내 행간 속에 숨어 있는 '기쁘고 즐겁고 보람있게'란 말만 생각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 전체가 온화한 기운으로 감싸고 있음을 알아챘다. 선배의 말과 나의 생각이 에너지 교류가 되었다는 증거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말들 중에서 좋은 마음으로 해 주었던 말이 상생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일전에 읽었던 황금찬 시인의 '꽃의 말'을 되새겨 보니 선배가 전하고자 했던 말의 향기를 읽을 수 있었다.

사람아/ 입이 꽃처럼 고아라/그래야 말도/ 꽃같이 하리라/사람아.
이처럼 말도 아름다운 꽃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 색깔을 보고 듣고 있으면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선배와의 통화를 계기로 대산종사의 법문인 '입으로 짓는 복'을 찾아서 숙독했다. 잘못 쓰면 입이 화문이지마는 잘 쓰면 복문이 되는 것이다.

그 내용은 남에게 희망을 주는 말, 남의 선행(善行)을 드러내는 말, 여진이 있는 말, 서로 화하게 하는 말, 공부심이 나게 하는 말, 신심이 있게 하는 말, 바른 말, 모가 없는 말, 남에게 선(善)을 하게 하는 말, 남을 공경하게 하는 말, 남의 잘못을 숨겨 주는 말, 유순한 말, 참된 말, 정중한 말, 감사를 느끼는 말, 겸손한 말, 자비스런 말, 공심이 있는 말이다.

이러한 말들은 뚜렷하게 새겨주는 각인력과 끌어 당기는 힘을 가진 견인력이 있다.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힘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
자신과 상대를 위해 복짓는 말을 해야


〈대산종사법어〉 운심편 13장에서는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니 말을 좋게 하면 그것이 나에게 복이 되어 돌아오고 말을 나쁘게 하면 그것이 재앙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느니라. 그러므로 혹여 터무니없는 욕됨을 당할지라도 남을 원망하지 말고 스스로 몸을 살피는 데 힘쓰라"고 밝히고 있다.

이 법문을 받들면서 그동안 무수히 많은 말을 했던 자신을 반조해 보았다. 상대편을 행복하게 했던 말은 몇 번이었든가 얼추 헤아려 보았다. 어쩌면 일생동안 했던 재채기 횟수보다 더 적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자신이 했던 좋은 말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되돌아 오게 되어 있다. 10점 만점의 과녁, 9점의 과녁에 적중될 수도 있다. 말이 미치는 힘은 대단한 것이다.

그 사람 모르게 좋게 여기고 칭찬 한 번 한 일이라도 기운은 먼저 통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말 잘못하는 공부인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다.

격언에서도 '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 보다도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으라'는 경침을 주기도 했다. 좋은 말은 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진정어린 말은 바로 바로 해야 한다. 말할 기회를 놓치면 아쉬움이 남는다. '할 수 있었는데.' '할 뻔 했는데.', '해야 했는데'는 포장된 말에 불과하다.

5월25일면 대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대법회가 있는 날이다. 대산종사께 조금이라도 보은하기 위해서라도 '입으로 짓는 복'의 근원처를 찾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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