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태산마음학교 신상도 교도

원불교사상연구원 월례연구발표에서 신상도 교도가 '왜 소태산인가'라는 주제로 깨어있는 종교, 열린 종교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19일 원광대 교학대학에서 열린 월례연구발표에서 그는 "원불교는 또 하나의 종교인가, 소태산인가 교단인가"라는 다소 돌발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내 삶을 위한 나의 교단이 아니라 소태산 그 분이 살아있는 세상의 교단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소태산 마음학교 운영자이기도 한 그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우리는 길을 잃는다', '역사의식이 없다면 개벽도 없다', '1900년대를 바라보는 눈' 등을 언급하며 왜 소태산인지를 설명해 갔다. 그는 "자본주의의 물신적 가치관은 세계의 모든 가치관을 우선해서 대중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눈만 뜨면 현란한 상업적 광고들이 오감을 자극하며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급속한 성장은 대중들의 종교적 관심을 빼앗아오기에 충분하다"며 "제일 큰 문제는 자본주의적 가치관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종교마저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을 벗어날 수가 없다. 큰 교회와 많은 신도, 선교확장이 전쟁을 방불케 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종교는 교조의 가르침을 충분히 전달하고 그들이 그 말씀을 통해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그가 어디에 속해있든 무엇을 하든 우리는 존재의 근원에서 서로 격 없이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축복해 줄 수 있는 영적해방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며 "그런데 그러한 종교지도자들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종교적 체험을 중요시하면서도 얼마나 영적으로 빈약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왜 내가 소태산의 가르침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그는 "1900년 인류사는 고난의 역사를 극복해낼 수 있는 비밀이 담겨져 있다"며 "소태산의 가르침은 시대정신이며 세계정신이다. 시대를 꿰뚫어보고 미래를 준비하던 영적 선지자였다"고 밝혔다.

소태산의 깨달음을 왜 대각이라고 하는가에서 그는 "원불교는 소태산의 대각이 바로 그 출발점이며 종착점이다. 이를 통해 이곳에 서 있고, 세상과 소통한다. 하나의 세계 속에서 그 하나를 지향한다고 하는 것은 나를 놓아야만 한다는 필연적 과제를 전제로 한다"며 "자신이 비어있지 못한다면 그 누구와도 만나지거나 소통할 수 없다. 소태산의 대각은 내가 얼마만큼 비워져야 하는가를 역으로 보여준다. 결국 가르침은 내가 얼마나 비워져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그는 "소태산의 깨달음은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것이었지만 세계관 역시 붓다의 연기적 세계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며 "은적 세계관에 대한 통찰, 바로 우주적이며 전체적인 세계 내에서 서로 없어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깨달음은 서로가 바탕이 된다는 연기적 세계의 존재론적 통찰인 것이다. 소태산은 존재의 문제를 단순히 인간 자체의 문제가 아닌 우주적 세계 아니 지구 전체의 환경적 문제로 확산함으로써 생명사상의 근간을 마련해 줬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집착과 미망의 세계로부터 벗어나서 전체의 세계에 대한 자각을 통해 가능한 일이다. 붓다는 우리가 어디에 어떻게 집착하고 있는지를 밝혔다면 소태산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의 마음과 하나의 몸으로 만날 것인가를 제시하고 있다"며 "어디에 존재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어디에 속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서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태산과 붓다를 바라보면서 존재의 중심에는 간격이 없음을 새삼 느꼈다고 언급했다.

삶의 문제는 시공을 떠나서 동일하지만 인류가 어떤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소태산은 각기의 종교가 그 교조의 가르침을 세속화함으로서 그 길을 잃고 있을 때 모든 종교의 근원을 꿰뚫어보고 그에 대한 회통의 길을 제시했다. 그는 "만약 붓다의 가르침에 얽매여있다면 이와 같은 통찰력은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가 지향하는 정신이 있고, 그 시대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역량을 그 정신의 실현을 위해 쏟아 부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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