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삶을 향한 생명의 율동

기도는 사람이 철저한 자기 비움을 통해 진리와 하나되고 그 힘을 얻어 창조적 삶을 개척해 가는 과정이다. 기도는 진리와 나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여기서 진리란 물리적 시·공을 넘어 삶의 세계와 우주자연현상에 여여히 작용하는 참된 이치라고 풀이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기도행위는 겉으로는 정적이지만 그 내용면에서는 역동적 성격이 강하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동서양의 모든 종교에서 강조하는 기도의 본래적 의미에는 '간절히 구함'과 '서원·다짐'의 의미가 공통적으로 내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간절히 구함에는 진리 또는 타력의 힘을 빌어 자신의 소원을 비는데 그 초점이 모아진다면, 서원·다짐은 개인 또는 공동체 차원의 계획과 의지를 진리전에 약속하고 맹세하는 것이다.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강조하는 원불교 기도의 전형은 소태산대종사의 삼밭재 기도와 창생구제를 위한 법인기도에서 찾을 수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소년시절 삶의 세계와 우주대자연에 대한 궁극적 의문에 대해 해답을 구하고자 5년동안 온 정성을 기울여 기도했다.

19년의 구도 고행 끝에 근원적 물음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후 9인제자들과 함께 창생구제를 위한 법인기도를 하였는 바 대종사의 개인적 기도는 간절한 구함에 큰 비중이 있었다면 9인선진들의 법인기도는 서원과 다짐에 그 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교단 초기의 기도 전통은 개교 100년을 앞둔 이 시점에 볼 때 얼마나 이어지고 있는가?

지금 교당에서 이루어지는 정례기도·특별기도 및 상시기도 등 다양한 기도가 형식적 기복 기도로 흐르고 있지 않는지 점검해 볼 일이다. 자신의 소망을 간절히 염원하는 기도는 의미있는 종교 행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간절히 구하는 기도는 자신의 소원을 충족하는데 그치지만, 진리전에 맹세하고 다짐하는 서원기도는 진리를 구현하고 생활화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원불교 100년을 기점으로 교단의 기도문화는 '기복 기도'보다는 '서원기도'에 더 비중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소태산대종사와 9인선진들의 진리적·사실적 기도정신을 이어받아 창생구제를 위한 서원과 다짐의 기도문화가 강화되고 확산될 필요가 있다. 물론 종교가에서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의 실존에 대한 통찰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도처에, 그리고 지구촌 구석 구석에 현실적으로 절박한 상황에서 의·식·주와 관련된 생존권 문제, 그리고 인권과 행복권을 유린당하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나약한 인간의 절규는 기도의 핵심 영역이 아닐 수 없다. 후천개벽시대를 열어갈 원불교인의 진정한 기도는 진리적이며 사실적이어야 한다. 기도중 가장 가치있는 기도는 우리들의 삶 자체이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우주만유와 삼라만상을 그대로 인정하고 공경하는 사실적 기도이어야 한다.

기도의 정점은 커다란 신심과 간절함에 바탕한 정진력으로 참 나를 깨닫고, 진리의 위력을 얻어 합일하는 것이다.

기도는 온전한 삶을 향한 생명의 율동이며 우주의 중심으로 자신을 일구어가는 바른 지름길이다.

<남중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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