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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의삶 5 / 식탁을 지키는 제철 농작물-'꾸러미'
대안의삶 5 / 식탁을 지키는 제철 농작물-'꾸러미'
  • 민소연 기자
  • 승인 2014.05.23
  • 호수 1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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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먹거리, 농촌을 살리는 도농상생의 대안
▲ 시금치와 상추 두부 달걀 등에 한과와 빵을 넣어 다양하게 꾸민 꾸러미.
외갓집에 다녀오는 차 트렁크는 언제나 가득해, 때로는 뒷좌석까지 양보해야 했다. 쌀이며 된장, 호박과 마늘, 때로는 설익은 감이 매달린 가지며 갓 피워낸 꽃들도 담아왔다. 도시의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농작물을 식탁에서 접하며, 쑥은 봄에 캐고 밤은 가을에 여문다는 걸 배웠다.

그러나 시대가 변해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파트에 살며 밭이 아닌 문화센터에 간다. 자식들 손주들 먹인다며 종류별로 조금씩 다양하게 길러내던 텃밭은 특히 도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족들이 먹으니 농약이며 화학비료 대신 사랑과 정성으로만 키워내던 외할머니의 농작물 한 짐, 이제는 그 자리를 '꾸러미'가 대신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를 농촌 살리기와 연결한 것이 바로 '꾸러미'다. 꾸러미는 농촌마을에서 각 가정이 길러낸 농작물을 한데 꾸려 주기적으로 보내주는 것으로, 최근 로컬푸드의 열풍에 힘입어 전국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다. 언니네텃밭, 한살림, 농협 등 지역공동체가 확보된 곳도 있지만, 마을 주민들이 함께 꾸러미를 구성하기도 한다.

이름있는 생산자의 제철농작물을 다양하게 소량구매함으로써 안전 추구는 물론, 식단이나 구입의 부담을 덜 수 있어 호응이 높다. 농촌에서는 단 하나의 농산물로도 유통마진 없는 지속적인 소득을 창출하는 데 의미가 있다. 부농이 되어 나 혼자 잘 사는 의미가 아닌, 우리 마을 모두가 잘 살게 되는 공동체 정신의 발현인 셈이다.

스물여덟 동갑내기 부부의 꿈

경상북도 포항시 청하면에 위치한 '비학산로컬푸드'의 스물여덟 동갑내기 부부는 매주 수요일 꾸러미를 채워 배송을 한다.

14일 꾸러미는 함원석 생산자의 친환경 유정란, 인정댁 할머니가 캔 산나물, 장근환 생산자의 유기농 피망 등에 박춘우 대표의 어머니가 직접 만든 촌두부와 배추김치까지 총 11종으로 구성됐다.

평균 열가지가 넘는 신선한 품목들의 꾸러미 가격은 2만5천원. 10만원 기준 총 4번의 꾸러미를 주1회나 주2회로 받을 수 있다. 특히 어머니 손맛으로 직접 만든 김치와 촌두부는 꾸러미 소비자들에게 언제나 0순위 요청 품목이다.

포항 내에서도 상옥·청송·신광·청하 지역에서 생산된 친환경 품목만을 고집하며, 일일이 생산자의 이름을 붙여 카페(cafe.naver.com/bihaksanfood)에 세심하게 공지하고 있다.

"전체 주문량의 60% 정도는 제가 직접 배달합니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반갑고 기쁜 느낌을 위해 밤부터 새벽까지 배송하죠. 주로 아기가 있는 주부나 연세가 있으신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이고 98% 정도가 아파트예요. 특별하게는 딸이 친정어머니에게 주문해주는 경우가 더러있죠."

서울외국어대학교 캠퍼스커플로 이른 나이에 결혼한 박춘우·송지선 부부는 박대표의 고향인 포항으로 귀향, 2012년 11월 '비학산로컬푸드'를 열어 꾸러미 사업을 펼치고 있다. 앞서 인근을 다니며 농부만 보이면 찾아가 꾸러미를 소개한지 수개월, 생소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꾸러미며 로컬푸드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다.

내 농사를 지으면 욕심 생길 것

"처음에는 몇가지 품목이라도 우리가 농사를 지어 꾸러미에 넣자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다른 꾸러미들을 보고, 제가 직접 하다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가 지은 농산물을 넣으면 전체적인 질도 떨어지고 욕심이 생기겠더라고요. 비학산로컬푸드의 꾸러미는 인근의 좋은 농작물과 맛있는 먹거리를 찾아서 선보이는 일이라는 개념을 확실히 잡게 됐지요."

경영학을 전공했던 박대표는 꾸러미를 '사업'으로 이끌기로 결심했다. 철저히 지역 내 다른 생산자들의 농작물로 꾸리되, 차별성을 위해 어머니의 촌두부와 반찬을 넣었다. 소비자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수시로 이벤트와 깜짝 품목을 넣었다. 친구소개나 SNS 이벤트, 깜짝경매를 열어 소통 창구를 넓히는 한편, 날씨나 뉴스 같은 트렌드를 적극 반영했다.

"사실 꾸러미는 업체에서 넣어주고 싶은 것만 넣고 비용을 받으니 일방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런 점에서 늘 고객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발렌타인데이에 장미꽃 한송이씩을 포장해 넣어드렸는데 참 좋아하셨어요. 돼지고기가 비싼 시즌에는 제주산 흑돈과 쌈야채, 장아찌 등 삼겹살 파티 꾸러미를 보냈구요. 농산물만 한다기보다는 '뭐가 필요할까, 뭐가 재밌을까' 늘 생각합니다. 인근에 공장이 있는 냉면이나 당뇨빵, 떡,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 같은 다양한 아이템을 섞어 선물셋트 같이 꾸리죠."
▲ 비학산로컬푸드의 가족 박춘우 송지선 부부와 우솔 박대표의 어머니(왼쪽부터) 가족은 매주 친정집의 마음으로 꾸러미를 보낸다.
도농상생의 대안이자 천지보은의 실천

젊은 꾸러미 사업가 박춘우 대표에게 꾸러미 사업은 농촌을 살리며 식탁을 지키는 가치 아래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분야다. 누가 어느 곳에서 하던지 지역적 특성만 잘 배합하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아이템 개발부터 포장·배송까지 직접 하는 지금의 땀방울이 수립 과정이라고 믿는다.

"꾸러미 사업은 앞으로 더 커지겠지만 지역이나 유통적인 한계라는 과제가 있습니다. 그런 시행착오를 극복해야 더 대중화 될 수 있습니다. 이 곳 지역특성상 젊거나 맞벌이 부부들이 많아 농작물보다는 반찬을 더 선호하시더라고요. 앞으로 선택 옵션을 넣거나 반찬 비율을 늘리는 등의 새로운 시도를 준비중입니다."

식구들이나 이웃들과 나눠먹는 정도의 수확물로도 수입이 생기게 된 어르신들의 '고맙다'는 인사가 가장 뿌듯하다는 박춘우 대표. 갑자기 주문이 줄어들 때는 남은 두부를 돌쟁이 아들 우솔이가 감당(?)해야 하기도 하지만, 아직 체념이나 좌절보다는 희망을 생각하고 말할 시기라고 생각한다는 그다.

'안전한 먹거리를 먹는 것이 곧 농촌을 살리는 일'이라는 꾸러미의 정신이 곧 도농상생의 대안이자 천지보은의 실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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