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성지 영산시대의 개막

▲ 100년 총람 제명바위.

원불교는 교조 소태산의 깨달음으로 창교

한 종교의 성립 조건은 교조와 그가 깨달은 교리와 그것을 믿고 수행하는 교도와 이를 확충시킬 기관, 조직, 공간 등으로 집약된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은 원기 원년(1916) 4월 28일에 우주만유의 본원 진리를 영산성지 노루목 팽나무 아래에서 깨닫고 이를 교화하기 위해 먼저 핵심 제자를 모아 공동체 생활에 돌입한다. 5개월 후에 그를 따르는 40여 신자들 중 표준제자 8명을 선택하였다.

원기2년(1917)에는 제자 8인들과 함께 조단을 하고 하늘과 땅과 8방을 응하여 시방세계 모든 사람을 제도할 통치교화의 법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단원의 신심정도를 관찰한 후 3순일로 모여서 〈성계명시독〉이라는 책을 가지고 10일간 지낸 마음을 조사하여 신성진퇴와 실행 여부를 대조 하는등 초기 법회를 감행 하였다.

창립의 최초기관, 불법연구회 기성조합 창설

소태산이 9인 제자 단원들과 함께 만든 '불법연구회의 기성조합' 기관 창설 취지에는 "시방세계를 위하여 기성조합의 한 기관을 건설해야한다" 고 전제한 후 교조와 제자 상호간에 깊은 신념 체계를 유지한다. 이어서 "우리가 경영할 바 공부와 사업은 보통 사람이 다하는 바가 아니며 이것을 하기로 하면 특별한 생각과 특별한 인내와 특별한 노력이 아니면 능히 그 성공을 기약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전제하며 다음의 실천 방안을 합의 하였다.

①각자 용처의 특별한 소비절약이 요구되니, 생명보호에 별 필요 없는 술과 담배를 끊고 ②의복, 음식 등 허례허식을 금지하고 ③재래의 휴식일을 좀 축소하여 매월 특별노동일을 정하여 일 하고 ④각자 매일 불미를 모으고 ⑤천재의 행사를 폐하여 소비대금으로써 본 조합에 저축하여 지성 실행하기로 한다. 모두 폐물이용과 소비절약으로 장차 큰 자원이 적립되어 불법연구회의 공부와 사업하는 데에 반드시 경제적 토대를 이루어 갈 것을 확신하였다.

방언역사와 최초의 회실 건축

원기3년(1918) 3월경에는 모은 조합기금과 숯 사업 등을 통하여 형성한 자금으로 방언 공사를 착수 폐물이용의 실천에 들어간다. 이 공사의 내외적인 의미는 ①먼저 굳은 신심의 유무와 일의 시와 종을 볼 때에 모든 사업을 성취할 힘이 있고 없음을 알게 하고 ②복록이 어디로부터 오는 근본을 알게 하고 솔성 하는 법이 골라져서 스스로 괴로움을 이길만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며 ③사람들이 방치한 폐물을 이용, 국가 사회의 생산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동년9월에는 옥여봉 아래에 조합실 건축을 착수하고 12월에 준공하여 가장 처음에 건설된 교화, 사업 공간으로서의 회의실을 마련하였다. 대종사는 이 회의실 상량에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봉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이라 적었다.

원기4년(1920) 3월에 방언공사의 준공을 보게 되니, 공사기간은 약 1년이고, 개간 면적은 약 10수 정도이다. 이때 소태산은 낮에는 공사총감을 하고, 밤에는 조합원들에게 교화에 전념 하였다. 조합공동체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종사의 법설을 듣고 재미가 진진하였다.

한 종교의 성립 조건은 교조와 그가 깨달은 교리와 그것을 믿고 수행하는 교도와 이를 확충시킬 기관, 조직, 공간 등으로 집약된다.원불교 교조 소태산은 원기 원년(1916) 4월 28일에 우주만유의 본원 진리를 영산성지 노루목 팽나무 아래에서 깨닫고 이를 교화하기 위해 먼저 핵심 제자를 모아 공동체 생활에 돌입한다. 5개월 후에 그를 따르는 40여 신자들 중 표준제자 8명을 선택하였다.원기2년(1917)에는 제자 8인들과 함께 조단을 하고 하늘과 땅과 8방을 응하여 시방세계 모든 사람을 제도할 통치교화의 법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단원의 신심정도를 관찰한 후 3순일로 모여서 〈성계명시독〉이라는 책을 가지고 10일간 지낸 마음을 조사하여 신성진퇴와 실행 여부를 대조 하는등 초기 법회를 감행 하였다.소태산이 9인 제자 단원들과 함께 만든 '불법연구회의 기성조합' 기관 창설 취지에는 "시방세계를 위하여 기성조합의 한 기관을 건설해야한다" 고 전제한 후 교조와 제자 상호간에 깊은 신념 체계를 유지한다. 이어서 "우리가 경영할 바 공부와 사업은 보통 사람이 다하는 바가 아니며 이것을 하기로 하면 특별한 생각과 특별한 인내와 특별한 노력이 아니면 능히 그 성공을 기약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전제하며 다음의 실천 방안을 합의 하였다.①각자 용처의 특별한 소비절약이 요구되니, 생명보호에 별 필요 없는 술과 담배를 끊고 ②의복, 음식 등 허례허식을 금지하고 ③재래의 휴식일을 좀 축소하여 매월 특별노동일을 정하여 일 하고 ④각자 매일 불미를 모으고 ⑤천재의 행사를 폐하여 소비대금으로써 본 조합에 저축하여 지성 실행하기로 한다. 모두 폐물이용과 소비절약으로 장차 큰 자원이 적립되어 불법연구회의 공부와 사업하는 데에 반드시 경제적 토대를 이루어 갈 것을 확신하였다.원기3년(1918) 3월경에는 모은 조합기금과 숯 사업 등을 통하여 형성한 자금으로 방언 공사를 착수 폐물이용의 실천에 들어간다. 이 공사의 내외적인 의미는 ①먼저 굳은 신심의 유무와 일의 시와 종을 볼 때에 모든 사업을 성취할 힘이 있고 없음을 알게 하고 ②복록이 어디로부터 오는 근본을 알게 하고 솔성 하는 법이 골라져서 스스로 괴로움을 이길만한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며 ③사람들이 방치한 폐물을 이용, 국가 사회의 생산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동년9월에는 옥여봉 아래에 조합실 건축을 착수하고 12월에 준공하여 가장 처음에 건설된 교화, 사업 공간으로서의 회의실을 마련하였다. 대종사는 이 회의실 상량에 '사원기일월, 직춘추법려, 송수만봉여춘립 계합천봉세우명'이라 적었다.원기4년(1920) 3월에 방언공사의 준공을 보게 되니, 공사기간은 약 1년이고, 개간 면적은 약 10수 정도이다. 이때 소태산은 낮에는 공사총감을 하고, 밤에는 조합원들에게 교화에 전념 하였다. 조합공동체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종사의 법설을 듣고 재미가 진진하였다.

"인류의 물질문명은

최고도로 발달, 생명을 위협하는데,

교단 초기정신으로 정신개벽의

횃불을 높이 들고…"


뜨거운 개벽의 횃불 높이 들 때

소태산은 방언 마치고 또 하나의 방언공사를 하자고 요구 하지 않았다. 진리적 종교로 발전해 가는 분기점에서 "권모사술이 세상에 분등하여 대도가 크게 어지러우니, 어서 방언 마치고 기도 올리자"고 서둘렀다. 이는 교조의 깨친 안목에서 당연한 수순을 제자들과 함께 밟은 것이다. 9인 제자들에게 '각자의 마음은 능이 천지를 감동할만한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할 것 이며 각자의 몸에 또한 중생을 구원할 책임이 있음을 항상 명심하여' 기도에 전념하도록 하였다.

원기4년(1919) 3월 26일에 기도를 시작하여 9인이 같은 시각에 일제히 회실에 모여 방위에 따라 각 기도봉에 가서 기도한 후 다시 회실에 돌아와 모임을 가졌다. 9인의 몸과 마음은 한 '뫔' 이 되어 일사 분란하게 기도로 일관 하였다. 기도 마지막 날인 8월 21일(음 7월 26일)에는 사무여한 이라는 최후 증서에 각각 백지장(白指章)을 찍어 결사의 의미가 드디어 백지혈인의 이적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생사를 초월한 9인 단원들에게 소태산은 세계 공명인 법호와 법명을 주었다.

근원성지 영산시대의 초기교단에 흐르는 정신은 바로 근검저축, 이소성대, 일심합력, 사무여한 등 생활문화의 혁신으로 일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인류의 물질문명은 최고로 발달, 생명을 위협하는데, 어떻게 정신개벽을 해야 할지(?) 교단의 초기정신으로 혁신의 횃불을 높이 들 때이다.

<교화연구소 /100년 총람 편집장>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