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훈 교도/김해교당

소태산대종사는 〈대종경〉 교의품 23장에서 "나의 교화하는 법은 비하건대 나무의 가지와 잎사귀로부터 뿌리에 이르게도 하고, 뿌리로부터 가지와 잎사귀에 이르게도 하나니, 이는 각각 그 사람의 근기를 따라 법을 베푸는 연고이니라"고 말했다.

이는 교화를 하고자 마음먹은 이들에게 크게 보감이 되는 말씀이다. 일반적으로 앞집 사람을 교화 하려면 무턱대고 '원불교가 좋은 종교니 법회 보러 같이 갑시다' 하는 것 보다는 인정이 건네고 대화로 친해져 마음에 소통이 된 다음 '나는 원불교에 다니는데 좋은 종교니 한 번 가봅시다' 하는 것이 이치에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던 일요일이란 귀중한 시간을 빼앗아 같이 가자고 말을 꺼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인지가 발달함에 따라 그들만의 시간에 원불교를 투입시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스마트폰 밴드를 통해 교화대불공 작업이 한창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람을 법회에 온라인 공간으로 초청하는 것도 녹록치가 않다.

'어떻게 하면 원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할 것인가?' 말을 꺼내기조차 힘든 실정이 돼버렸지만 역으로 상대방이 관심을 가지고 물어 온다면 이건 완전 대박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왕도는 없다. 그러나 방법은 있을 것이다.

아무 종교도 없던 지난날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봄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 미술반에 같이 있던 친구가 새 학기가 되면서 한 반이 되었다. 이 친구는 연꽃문양의 그림을 그려서 슬며시 보여준다. "이게 뭐야?"하고 물으니, 이 친구는 씩 웃기만 하고 말이 없었다. 어느 날 내 앞에 내민 이 친구의 손엔 연꽃 문양의 하얀 바탕에 둘레에는 검은 테두리가 있고 중앙에는 동그라미가 있는 예쁜 배지를 주는 것이 아닌가. 다시 물었다. "이게 뭔데?" 빙긋이 웃으며 건네는 한 마디는 약간 당황하게 만들었다. "원불교 배지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아주 소중한 홍보물이 있다. 우리는 왜 이것을 오랜 시간 동안 사용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세밀히 따지고 보면 타종교의 득세로 원불교인임을 약간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제 우리는 원기100년을 앞두고 있다. 가슴을 펴고 당당히 나서야 할 때이다. 너도 나도 원불교 배지를 악세서리처럼 달고 다닌다면, 이만한 교화가 있을까? 혹은 배지가 딱딱하고 무게감이 있다면 온화하고 밝게 변형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이것을 본 사람들이 "참 좋은데요! 그것 어디에서 샀어요?"라든지 여타한 방법으로 물어온다면 "이거 원불교 가면 줍니다" 등의 대화로 물꼬를 틀 수 있는 좋은 방법이며, 원불교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100년성업봉찬 맞이하며
전교도 '배지 달기'운동 벌여나가야


빠르게 진보하는 매체 등 시대에 맞는 교화도 중요하지만, 아주 손쉽고 간단한 것에서 재정비하여 출발해본다면 뜻밖의 수확도 거둘지 모른다. 항상 등장하는 드라마 속의 어느 회사 에어컨 상단부의 일원상은 우리는 보고 놀라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일원상이 원불교'임을 인식 될 때 교화는 한 층 수월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100년성업봉찬을 맞이하여 전교도 '배지 달기' 운동을 벌여나갔으면 한다. 너도 나도 적극적으로 이 운동을 전개한다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원불교100년 이제부터 시작이다. 가슴에 예쁜 악세서리 일원 문양으로 말 없는 교화가 시작된다. 굳이 원불교 배지임을 말 할 필요도 없다.

이제 그들이 물어 올 것이다. 원불교가 무엇인가를, 이런 기회를 미리 준비하여 새 시대 새 종교임을 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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