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생명 총체적 부재의 '대한민국'을 낳다

▲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이다. (자료 OECD Health Data 2011)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한달 반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이다. 아직도 찾지 못한 시신이 차가운 바다 속에 있으며, 황망함과 애도를 넘어서, 유가족과 성난 많은 대중들은 원인 파악과 해결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무엇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집단의 만행과 관행화된 안전시스템의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

20년이 지난 여객선을 들여와 과적뿐 아니라 과다한 인력을 수송하기 위해 개조를 해 그 동안 과부하된 상태에서 운행되었다. 더욱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어떤 점검 장치에 의해서도 이러한 문제가 걸러지지 않았다. 우리를 더욱 경악케 하는 것은 참사 이후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하지 않은(못한) 현상으로, 국민들이 국가와 정치권을 불신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세월호 사건은 국가의 총체적 안전구조의 부재를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너무도 중요한 시사점이 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사태를 두고 안전의식의 부재라고 명칭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는 시스템의 부재와 국가적 차원에서 안전에 대한 가치의 상실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그냥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이는 이윤을 목적으로, 안전을 무시하고 행해진 행동으로, 안전을 보장하고 점검하는 시스템이 사라진 현상을 대변하는 하나의 사례이다. 이러한 모든 배경 뒤에 상당한 유착관계가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정치권은 세월호 사건을 통해 제기된 수많은 의혹에 대해 어느 누구도 가릴 것 없이 철저히 조사하여 답을 찾아야 하며, 그 결과로 책임질 모든 사람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세월호 사건만일까? 우리나라 곳곳에 돈을 우선시하고, 사람의 목숨과 안전이 경시되는 곳이….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노동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돈신숭배, 정치지도력 부재
근로자 안전·건강 최우선 필요


OECD 국가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일하고 있는 한국 노동자는 2012년말 2092시간을 평균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마스 무어가 16세기에 쓴 〈유토피아〉에서는 하루 6시간을 노동을 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유토피아가 아닐지라도 한국 노동자는 세계에서 가장 길게 일하고 있는 국민이며 OECD 평균에 비하면 연간 327시간 약 2개월(1.91개월)을 더 일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시간을 사회적으로 강요된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알다시피 한국은 산재국가라는 오명을 떨치고 있지 못한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선 9만1000여명의 재해자가 발생했고, 이중 약 2000명이 사망했다. 외국인 근로자는 매년 100명 정도가 사망하고 있어, 한국에 돈 벌러 왔다 가족의 품에 안기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있다.

자아실현의 장이라고까지 희망하지 않더라도 죽거나 다치거나 아프지 않아야 할 장소인 일터에서 매일 250여명이 다치고, 하루 5명이 귀중한 목숨을 잃고 있다. 배를 만드는 현대중공업에서 지난 두 달동안 8명(대부분이 비정규직)이 사망한 것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우리나라 산재 발생률과 산재 사망자 추이는 괴리를 보이고 있는데 통상적으로 산재 발생률이 감소하면 산재 사망률도 감소하는 것이 추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망자수는 크게 감소하지 않은 반면 산재 발생률은 줄어 들고 있어, 사망자 수는 정확히 집계가 되지만 아마도 산재를 은폐하는 비율이 높아 괴리가 나타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 한국의 취업자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을 OECD 국가들과 비교한 표. (자료 배규식(2014)에서 인용)
국제노동기구가 집계한 2008년 산재 통계를 보면 한국은 10만명당 사망자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산재 부상자로만 보면 중간 정도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어야 한다. 이윤을 위해 근로자의 안전이 방기되거나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업주의 과실이 드러났을 때 그 책임을 전적으로 묻는 법과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영국에서 '기업살인법'으로 안전사고를 발생하는 기업주에게 막대한 책임을 묻는 것처럼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전체 재해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근로자 수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안전시스템 구축과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업주의 안전보건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사업장마다 안전보건예산을 얼마만큼 사용했는지 공포해야 한다. 세월호 선원을 위한 안전보건교육비가 어마어마한 이윤에도 불구하고 50만원 수준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디 이것뿐이랴? 사회보장체계가 미약한 우리나라에서 경제적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살을 택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세모녀 자살 사건'은 조그마한 사회적 지원만 있었어도 막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루 평균 39명, 37분마다 한 명씩 자살로 생을 마감(2012)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남자 사망원인 중 4위, 여자 사망원인 중 6위가 자살이며, OECD 국가 중 여성의 자살률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국가이기도 하다. 물론 10-30대에서도 사망원인 1위(통계청, 2013)가 자살로 젊은이들이 생을 마감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타이틀을 9년째 갖고 있으며 OECD 평균은 12.5명 수준으로 한국의 절반 이하다.

자살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매우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경제적·사회적 어려움이었다. 보건복지부는 2004년 '자살률 20% 감소'를 목표로 자살예방 1차 5개년 계획을 시행했지만 2004년 인구 10만명당 23.7명이던 자살률은 2009년 31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연령대별 자살충동을 살펴 본 한 연구(국회예산처, 2014)에 의하면 모든 자살충동 배경에는 경제적 어려움이 존재하고, 10대의 성적·진학문제가 자살충동 1위 원인인 것을 제외하면, 모든 연령층의 자살충동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400여 건의 자살 사망자 유서 분석에서 박형민(형사정책연구원)연구위원은 "경제적·사회적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자살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했으며, 26인의 유서를 분석한 또 다른 연구에서도 "특히 해결하기 힘든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면 가족·대인 관계 문제로 확산돼 자살을 선택하는 비율이 높아진다"고 분석한 바 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대인관계의 어려움 및 좋지 않은 정신건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자살이 단지 상담 등으로만 해결되기 어렵고 전반적인 경제사회적 시스템과 함께 지역사회내 지지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스웨덴은 2008년부터 자살률을 줄이기 위해 지역보건소, 지역 실업사무소, 사회복지과 등이 함께 연계해 자살 위험요소에 대처하고 있는데 자살문제를 고용·복지와 연계된 총체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자살예방의 '사회적' 패러다임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 글에서는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이러한 사례가 보여주는 바는 명백하다. 한국은 돈(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의 흐름, 대다수의 사람을 빈곤에 허덕이게 하는 사회적 기제, 생명을 우습게 보거나 무시하는 권력집단의 생각, 안전과 생명에 대한 점검 시스템의 부재, 여기에 '가만히 있는' 많은 우리들의 모습이 어우러져 총체적 위기 상황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각자 살 길을 찾아보지만, 절대 혼자서는 찾을 수 없기에 연대하고, 정치권에 그 책임을 다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저항해야 한다.
▲ 정진주 교도 /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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