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탄생100주년 기념대법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모두가 열심히 준비한 행사였다.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았음에도 참여한 교도들은 질서 있고 정연하게 법회에 참여했다. 또한 함께 한 자원봉사자들은 미소를 잃지 않고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 했다. 이에 사은님이 응해주심인지 몰라도 작은 사고조차 하나 없었고, 비도 생각보다 많이 오지 않아서 원활히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이제는 원기100년을 생각하며 '백년의 약속'을 향해 준비하고 나아갈 시점에 들어섰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 이것저것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해야 할 원100의 모습, 즉 원불교 2세기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학부 때 한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어떻게 해야 동아리를 잘 운영할지 몹시 고민하고 있을 때가 있었다. 그 때 〈정전〉 음강을 하다가 〈정전〉 제3수행편 최초법어 중 '제가의 요법'이 눈에 들어왔다. 그 제가의 요법에 나오는 '호주'를 바로 동아리장인 나를 놓고 대조를 해보니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해 볼 만 한 용기가 났다. 그렇게 동아리를 집(家)으로 놓고 공부를 하다가 당시 영산수도원에 있었던 법타원 김이현 종사께 문답감정을 받으니 "참 잘했다"고 말씀해준 기억이 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다. 아무리 시대를 선도하고 수도하는 종교가라 할지라도 그 종교가 집안이 화목하지 못한다면 종교 역할은 물론 사회로부터 그 정체성까지 의심받을 것이다. 더욱이 스승님들은 게송에서 '한 집안 한 권속', '인류는 한 가족'이라고까지 말씀해 주셨으니 '집안의 화목함'을 더 강조하면 사족이 될 것이다.

원100성업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겠지만, 이러한 화합 정신을 놓치고 가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누구라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도록 신경을 각별히 써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화합'이란 말 그대로 교단 내 모두가 화목하게 어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통과 교류는 당연하며 차별과 소외받는 곳이 점점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가와 출가'의 구분보다는 '책임과 의무'에 의한 구분이 이뤄져야 할 것이며, '법위의 위상'이 제대로 서야 할 것이다. 경제와 회계가 투명하고, 단순한 '연차'보다는 '법력(법위)과 능력, 경험'에 바탕한 지위가 인정되는 풍토가 열려가야 할 것이다.

화합이란 결국 구성원들이 모두 불만이 없고 거짓이 없는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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