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락 목사

독일이 통일되기 전, 서독 사민당 부대표를 맡고 있었던 헤르베르트 베너는 "접근을 통한 변화에는 나의 변화도 포함된다" 라고 선언했다. 동독의 민주화를 요구하기 전에 좀 더 정의롭고, 좀 더 공정하며, 좀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서독 사회의 건설을 먼저 이뤄야 한다고 본 것이다.

베너의 이와 같은 생각은 당시 수많은 이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빌리 브란트나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등의 정치지도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결국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독일이 하나 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할 때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한일 종교인 평화포럼에 참여해서 여러 종교인들과 함께 평화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평소에 만나기 어려웠던 여러 종교인들과 어우러져서 삶을 나누고 신앙을 나누고 평화에 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눴던 일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특별히 한없이 맑고 고운 영성으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큰 기쁨을 선물해 주었던 송재도· 정민주 교무와의 만남은 개신교 목사인 본인에게도 참 많은 도전이 되고 감동이 되었음을 밝혀야 할 것 같다.

사실 원불교 성직자와 직접 만나 대화하고 교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신교 목사와 원불교 교무는 그동안 왜 만나지 못했을까?' '대체 어떤 장벽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일까?' 그건 바로 개신교의 지나친 폐쇄성 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지나치게 편협하고 단편적으로 이해한 나머지 다른 종교인들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고 적대시해 왔던 것이다.

십자군 전쟁이 그러했고 선교를 빙자해서 제3세계를 향해 저지른 정복 전쟁이 그러했으며 오늘날 다른 종교인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몰지각한 신앙인들의 행태가 그러하다. 나 자신이 개신교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이 지면을 빌어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는 '화해와 하나 됨', 그리고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이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삭개오'라고 하는 인물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삭개오는 작고 못생긴 세리였다.

사실 삭개오가 정말로 그렇게 작고 못생겼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세리로서 동포들의 고혈을 빨아 로마에 갖다 바치고 자기 배를 불리는 행태를 일 삼았기 때문에 더더욱 혐오스럽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삭개오는 자신의 안위와 자기 배 불리는 것 외에는 눈꼽 만큼도 관심이 없었으며 그래서 모든 이들의 미움을 받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런 삭개오를 향해서 "내가 너의 집에서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했다. 아무도 찾지 않았던 그의 집으로 뚜벅뚜벅 들어갔고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했다. 삭개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예수 믿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그의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보고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 주었던 것이다.

삭개오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던 편견의 장벽, 자존심의 장벽, 분노의 장벽, 이기심의 장벽을 넘어서 그에게 먼저 다가감으로써 삭개오 스스로 장벽을 깨뜨리고 세상 가운데로 나아올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교인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자 사명이 아닐까?

이웃 종교인에게 귀한 지면을 허락해 줌으로써 먼저 장벽을 허물고 손 내밀어 준 원불교 신문에 감사한다. 원불교와 기독교의 아름다운 동행을 통해 마음 상한 모든 이들이 고침을 받고 슬픔의 눈물이 다 거두어 지는 평화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하늘의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밀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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