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人戱墨園中石 도인이 먹으로 정원의 바위를 그리는데
紙上忽見孤竹影 쓸쓸한 대나무 그림자가 언뜻 종이에 나타난다
急起從之不如何 급히 일어나 따라 갔지만 어쩌지 못하고
月落風飜遷俄頃 달은 지고 바람 불자 갑자기 사라졌구나

'달 아래 대 그림자 그리려고(月下寫竹影戱言)' -신위(申緯 1769-1845 조선 후기의 문신)

신위의 본관은 평산, 호는 자하(紫霞), 시서화에 뛰어난 당대의 대표적인 시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저서로 시평집인 '논시시', 시조를 한역한 '소악부', 판소리를 한역한 '관극절구', 현실 문제를 다룬 '잡서', 문집으로 시 4천 여수를 모은 '경수당집' 등이 있다.

신위는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와 병조참판을 지내면서 중국의 옹방강, 조선의 예인 학자들과 폭넓게 교류하였다. 글씨는 청나라의 새 풍조를 받아 속기(俗氣)를 벗어났으며, 강세황의 영향을 받은 대나무 그림은 단아한 기품을 보여 이정, 유덕장과 더불어 신위는 조선의 3대 묵죽화가로 손꼽힌다. 특히 이서구의 시풍을 계승한 시는 조선말 4대가인 강위, 황현, 이건창, 김택영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위 시는 달밤에 대나무의 그림자를 포착하려는 자신을 희롱한 탐미적인 작품이다. 번득이는 감수성과 예술적인 표현력이 '조선 제1의 시인'이라고 한 김택영의 평가처럼 그 신기(神氣)가 선승의 오묘한 선시로 착각될 정도이다. 달밤에 술에 취해서 자기 그림자와 춤을 추고, 호수에 뜬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낭만적인 이백을 연상시킨다.

우주적인 시간으로 보면 인생이란 눈 한 번 깜박임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적인 환상에 매달리는 인생이 애처로운데, 갑오년은 늘 이리 소란스럽고 근심스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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