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老翁守雀坐南陂 노인은 참새 지키려 남쪽 언덕에 앉아있고
粟拖狗尾黃雀垂    개꼬리에 끌린 조의 이삭에 참새가 대롱대롱 매달려있네
長男中男皆出田    장남 차남 모두 들로 나가고
田家盡日晝掩扉    농가는 종일토록 사립문 닫혀 있네
鳶蹴鷄兒攫不得    솔개는 병아리 채려다 뜻을 이루지 못해
群鷄亂啼匏花籬    박꽃 핀 울 밑에서 닭들이 요란하게 울어대누나
少婦戴棬疑渡溪    젊은 며느리는 나무그릇 이고 조심조심 돌다리를 건너고
赤子黃犬相追隨    어린아이와 누렁이가 서로 따라가네

'농가(田家)'-박지원(朴趾源 1737-1805 조선 후기의 문인)

박지원의 본관은 반남, 호는 연암(燕巖), 실용적인 분야에 관심을 쏟은 대표적인 실학자로 만년에 양양군수를 지냈다. 저서로 '열하일기'가 있다.

노론의 가난한 명문 후손인 연암은 실학자 이익의 제자인 이양천에게 글을 배운 뒤 1780년 정사 박명원(朴明源)을 따라 베이징을 체험하고 저술한 '열하일기'는 중국의 풍속, 제도, 문물을 소개하면서 조선 후기 부패한 양반사회의 모순을 세속적인 문체로 폭로한 작품이다.

'열하일기'에 수록된 '허생전'은 만 냥의 돈을 빌린 허생이 과일과 말총장사로 번 큰돈으로 변산의 도둑떼를 섬에 데려가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 주고 전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였다는 소설이다.

위 시는 농가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서 농민에게 애정과 관심을 보인 실학파다운 작품이지만, 서정성이 좋은 시는 '새벽길(曉行)'이다.

鵲孤宿蜀黍柄 月明露白田水鳴 樹下小屋圓如石 屋頭匏花明如星(한 마리 까치 외로이 수숫대에 잠들어 있고, 달은 밝아 이슬은 희고 논에 물 흐르는 소리, 나무 아래 조그만 집은 바위처럼 둥그스럼하고, 지붕에 핀 박꽃이 별빛처럼 밝기도 하다)

박지원이 시를 썼다는 것은 퍽 뜻밖이지만 4대시가(四大詩家)인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박제가가 그의 제자로서 이서구를 제외하면 모두 서얼인 걸 보면 그의 개혁정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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