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사 말씀하시기를 "큰 도는 서로 통하여 간격이 없건마는 사람이 그것을 알지 못하므로 스스로 간격을 짓게 되나니, 누구나 만법을 통하여 한마음 밝히는 이치를 알아 행하면 가히 대원정각을 얻으리라."

대종사 문하에 출가하여 마음을 조금씩 알고 가장 크게 느꼈던 점은 '내가 상이 많았었구나'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마음공부를 추어 잡으려는 교도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상없는 공부'를 집중적으로 한다면 훨씬 빠르게 성리를 가늠 잡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왜냐하면 대종사의 말씀처럼 큰 도는 서로 통하여 간격이 없는데 우리가 그것을 모르므로 분별심으로, 마음의 고정된 상으로 스스로 간격을 짓고 울을 좁게 하여 광대하고 밝은 본래 마음을 속박과 구속으로 부자유하고 어둡게 만들기 때문이다.

5장 본문에서 '만법을 통하여 한마음 밝히는 이치를 알아 행한다'는 것은 통만법명일심((通萬法明一心)으로 정산종사께서 "우주의 대소유무와 인간의 시비이해, 이러한 만사만리를 보아서 나의 마음을 밝히고 또 밝혔으면 이것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만법하여 명일심하기도 하고 명일심하여 통만법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교단의 선진 중에 은타원 조일관 교무가 속초교당에서 봉불식 준비를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을 갔다가 봉불식을 미룰 수가 없어 병원에서 곧장 나와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나머지 봉불준비를 했다고 한다. 대산종사께서 이 소식을 듣고 발분망식(분발심으로 아픔을 잊는)의 경지라고 하였다는 법문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가 선진들과 같이 수행과 교화에 발분망식이 이어진다면 대원정각도 무슨 어려운 일이겠는가 하는 확신이 들었다. 발분망식의 경지! 이 경지야말로 생활 속에서 유무초월의 성리를 증거해 주는 살아있는 법문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통만법하여 명일심하기도 하고, 명일심하여 통만법하기도 한다'는 말씀은 통만법명일심을 항마전과 항마이후로 나눌 수 있는 기점을 제시해준 법문이라 생각된다. 통만법 명일심은 항마이전에 일상생활 속에서 배우려는 즉 성심으로 경계 속에 수없는 감각, 감상이 이어지게 하여 마음을 밝히는 수행이라 할 수 있다.

명일심통만법은 이미 한마음을 밝혀 이치에 걸림이 없는 이무애(理無碍)가 되었으니 다시 만법을 통하여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대원경지까지 성리의 끝판을 이루게 하는 공부가 될 것이다는 감상이다. 항상 자신이 부족함을 느끼고 법문에 대조하여 진급하려는 향상심이 있다면 통만법 명일심은 보보일체대성경을 이루는 자명등(自明燈)이 될 것이다.

대산종사 말씀하시기를 "대종사께서 교전을 펴신 뜻은 만법을 통하여 한마음을 밝히고 온 세상을 불은화 일원화 하자는 것이니, 이 교리라야 전 생령을 널리 구제할 수 있느니라"고 밝혀 주었다. 만법을 통하여 한마음을 밝히는 것이 수행이요 자력이며, 자성불신앙이요 평화세계를 건설하는 묘법이라는 말씀으로 이해된다.

<기흥교당>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