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현실인식과 따뜻한 시선으로 마음 치유

▲ 〈숨은 길 찾기〉 저자. 아동청소년문학 이금이 작가.
요즘 청소년들이라면 교과서를 통해 접해봤을 이금이(52) 작가의 〈너도 하늘말나리야〉. 사춘기에 접어든 세 아이가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스토리를 그려 낸 이금이 작가는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상처받은 아이들을 위한 청소년 소설을 발표해 독자들의 마음을 치유해 왔다. 1984년 '새벗문학상'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한 이후 국내 청소년 소설 분야의 선구자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유진과 유진〉을 비롯해 〈벼랑〉, 〈주머니 속의 고래〉, 〈소희의 방〉, 〈신기루〉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해 온 그는 올해 〈너도 하늘말나리야〉와 〈소희의 방〉에 이어 3부작의 완결판인 〈숨은 길 찾기〉를 발간했다.

60만 부가 팔린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이들은 〈숨은 길 찾기〉에선 중학교 3학년이 돼 사랑과 길에 대해 이야기 한다. 1989년 결혼 후 농민운동을 하는 남편을 따라 충북 청원의 시골마을에 살면서 느티나무와 진료소를 보고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처음 쓰게 됐다는 그는 〈숨은 길 찾기〉에서도 자신의 특징인 섬세한 심리묘사를 펼쳤다. 15년에 걸쳐 성장소설 3부작을 완성하고,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아이들의 영혼을 사로 잡아온 우리 시대의 동화 작가 이금이. 정확한 현실 인식과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지혜와 희망을 통해 아동 청소년 문학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작가의 꿈을 가지게 된 계기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었다. 처음으로 완독한 책이었다. 새로운 세상이 주는 재미와 감동에 푹 빠진 채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부터 작가의 꿈을 갖게 됐다. 세상에 발표된 첫 작품은 등단작인 단편동화 〈영구랑 흑구랑〉이다. 홍수로 시뻘건 황톳물이 냇둑을 무너뜨리며 콸콸 흘러내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소재를 찾아 쓴 첫 동화다. 이처럼 등단 초기엔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찾아 쓴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대부분 일상 속에서 소재를 얻고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숨은 그림을 찾는 것처럼 감춰진 이야기 감을 찾아낼 때의 희열은 아마 광맥을 찾아낸 사람 못지않을 것이다.

-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작가에게 책은 자식과 같아서 애착이 더 가고, 덜 가는 책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다만 작품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거나, 출간 뒤에도 등장인물들의 행로에 대한 기대나 궁금함이 남아 마음이 가는 작품들이 있다. 여성 작가로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남자아이들의 심리를 그리는 일이 새로운 도전이 됐던 〈얼음이 빛나는 순간〉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과 독자들의 관심에 힘입어 15년에 걸쳐 완간된 〈너도 하늘말나리야〉, 〈소희의 방〉, 〈숨은 길 찾기〉 3부작이 마음이 간다. 작품을 쓰는 동안 나 또한 변화하고 성장했으며 그런 것들이 작품 안에 오롯이 담겨있기에 특별한 것 같다.
▲ 15년간의 대장정 끝에 완간된 3부작. 〈너도 하늘말나리야〉, 〈소희의 방〉, 〈숨은길 찾기〉.
- 청소년 소설과 어른들의 역할

내가 청소년 소설을 쓰는 이유는 어른들의 이야기보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에 서있는 청소년들의 삶과 내면에 더 관심이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다시 그 시기의 감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도 청소년 소설이 주는 매력인 것 같다. 청소년기는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하는 때다. 어른들은 그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실수를 하고, 좌절도 하고,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어른들의 사고나 가치 기준에 맞춰 아이들을 이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청소년들은 자기 자신을 좀 더 사랑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자기 삶의 주인은 자신임도 잊지 않고 자신을 탐색하고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래는 현재가 모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무 먼 미래 때문에 현재 누려야 할 것들을 유예시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청소년 소설이 나아가야할 방향

청소년 소설이 나아가야할 방향은 나도 늘 고민이 되는 문제다. 청소년소설은 청소년이 구성원으로 살고 있는 사회와 그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배제한 채 쓸 수 없다. 청소년들의 삶과 현실이 어른 못지않게 고단하고 팍팍하다고 해서 마냥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만 그려서는 독자들에게 위안과 재미를 줄 수 없다. 그렇다고 거짓 위안이나 작가에 의한 손쉬운 해결책을 제시해서는 작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늘 고민이 된다. 나는 청소년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되 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이 자신이 진정으로 이해받고 있음을 느끼고, 그를 통해 위안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쓰려고 노력한다. 물론 재미와 감동은 필수다. 청소년 독자들이 내 책을 읽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조금이나마 위안 받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아동청소년문학가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행복은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들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이다. 나 역시 블로그나 메일 등을 통해 꾸준히 소통하는 어린이와 청소년 독자들이 여럿 있다. 그들은 간간히 자신들의 안부를 전해오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내 작품을 읽은 소감을 전해오기도 한다. 한 명, 한 명과의 추억이 모두 소중하므로 나는 어느 것 하나, 어느 사람 한 명을 특별하게 뽑지 않고 모두 내 가슴속에 간직하고 싶다. 대신 자랑하고 싶은 것이 하나있다. 강연을 갔던 초등학교 사서 선생님한테 받은 선물이다. 40여권 되는 내 저서들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그 안에 책 속의 글귀를 손수 써넣은 것이다. 나는 종종 그 작은 책들을 꺼내 펼쳐보곤 한다. 이 작은 책들이 독자의 애정과 정성이 지쳤을 때는 비타민이 되고, 나태해졌을 때는 죽비처럼 나를 깨워주곤 한다.

- 앞으로의 계획

8월부터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새 작품을 시작했다. 구상은 어느 정도 끝냈는데 자료 조사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라 우선은 그 시대에 대한 공부를 할 계획이다. 아마도 올해 여름을 작품과 함께 뜨겁게 날 것 같다. 아동 청소년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작은 조언을 해주고 싶다. 작가는 인간과 삶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력과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아동청소년 문학은 그 기본 위에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사랑과 이해가 부가되는 장르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많은 경험과 폭넓은 독서, 깊이 있는 사색으로 내면의 힘을 기르기 바란다. 좋은 글은 그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나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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