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하기 전 세운'성불제중의 서원'

▲ 故 방진도 교도가 생전에 성주성지에 행가한 좌산상사를 배알했다. 이후 성주성지에서 산행과 기도로 자연치료에 정성을 다했다.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의 성금답지 이야기는 늘 가슴 뭉클하게 한다. 일생동안 모은 정재를 교단에 희사하고 열반한 고 방진도(호적명 미화) 교도.

방 교도는 평소 잔기침을 앓아오다 2013년 12월 중순경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폐암말기 진단을 받았다. 평소 신앙이 독실한 어머니(김경오 교도)와 스승님들의 법문을 즐겨했다. 그는 '생사는 낳고 죽는 것이 아니라 가고 오는 것이요, 인과는 주고받는 것'이라는 법문에 마음의 안정을 얻으며 가족들과 함께 병원 치료와 신앙·수행에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별다른 차도가 보이지 않자 항암치료를 과감히 중단하고 진리에 맡기는 심정으로 성주성지에서 산행과 기도 수행으로 자연 치료에 힘썼다.

부모 모두 교육가로 방 교도는 교육자 집안에서 자라난 것을 늘 긍지와 보람으로 여겼고, 독신으로 평생 모은 정재를 앞서 열반한 아버지의 축원과 교단 발전을 위해서 '아프리카 어린이학교 설립 성금'과 '원100성업 성금'으로 각각 1억씩 희사한다는 유서를 생전에 남겼다.

강북교당 김호인 교무는 "교육가인 아버지를 이어 같은 교육자의 길을 걸어간 방 교도가 생전에 어려운 아프리카 학생들을 위해 아버님 이름으로 교육사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강북교당 전신인 봉덕교당 창립주이기도 한 어머니의 안내로 원100성업 성금에도 동참하게 됐다"고 사연을 전했다.

이후 병세가 악화돼 열반 3일전부터는 끊임없는 염불로 일심을 모았고, 어머니께 다음생에는 우리도 도인되고 전무출신하자는 말을 남기고 지난 달 7월23일 열반에 들었다.

방 교도의 큰 오빠인 방중철(호적명 성린)교도는 "병상에 누워 열반하기 얼마 전부터 '내생에는 성불제중하겠다'고 염원하며, 자신도 꼭 전무출신 하겠다고 서원을 세웠다"며 "늘 신심깊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진리와 스승에 대한 신성을 자연스럽게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방 교도는 1967년 어머니의 연원으로 대구교당에서 입교해 '진도'라는 법명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원불교와 인연이 돼 종교적 품성을 길렀다.

당시 대구교당 부교무였던 장경진 원로교무는 "부친 방교준 교도의 열반을 계기로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됐다"며 "고통이 많은 병환 중에도 방 교도가 마음을 열고 많은 부분을 상담하고 의지해서 고마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신앙과 수행을 놓지 않고 끝까지 정진하는 모습 속에서 깊은 감화를 받고 그를 위해 힘이 되고자 노력했다"며 "방 교도와 소중한 인연을 위해 중앙원로수도원에서 그를 위해 천도재를 모시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 방진도 교도는 1963년 1월14일 출생, 부모의 뒤를 이어 교육자로서 영천여자중학교 음악교사, 미래대학 및 구미대학 음악강사, 피아노 학원 등을 운영, 후진 지도에 열성을 다했다. 음악으로 세상을 정화하고자 하는 선구자적 삶으로 기쁨과 긍지로 소임을 다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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