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마음공부를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친한 언니랑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함께 가는 언니는 원불교에 대해 전혀 모르고 단순히 템플스테이 정도로 생각하고 따라나섰다. 하지만 만덕산훈련원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우리는 새벽좌선이 끝나면 계단청소에 설거지를 하고 마늘을 까고 일을 해야만 했다. 게다가 양제승 원로교무의 설법 뿐만 아니라 도반들의 긴 강의까지 들어야만 했다.

결국 3일째 되는 날 화가 난 언니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열차표를 예매하려던 중 양태홍 훈련원장과의 면담시간을 가지게 됐다. 한참을 면담하고 나온 언니의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무언가 풀린 표정이다. 무종교인 언니에게 설법시간은 매우 버거웠던 모양이다. 대신에 함께 훈련 나는 예비교무들과 대화를 하며 초선지를 자주 오르고 식사시간과 회화를 통해 마음공부하는 여러 교도들의 얘기를 들으며, 독존(獨存)하는 자신에 대해 많이 느꼈다고 한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는 좋은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고마워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첫날부터 양 원로교무의 '일원상의 진리' 강의는 한마디로 돌직구였다. '일원이 무엇이냐', '바 없는 마음이 무엇이냐', '지금 얘기를 듣고 있는 그것은 무엇이냐', 계속 이어지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할지 몰라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양 원로교무가 제시한 해답은 '그냥 바라보라'였다. '가만히 내 안을 바라만 보면 된다',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쉬운 공부법이다', 그 말씀을 안고 혼자 참 많이 걸어 다닌 것 같다. 초선지를 하루에도 몇 번을 가기도 했고, 훈련원 입구까지 걸었다 돌아오며 깊은 사색에 빠지고 그러다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안암교당 수요공부방에서 들었던 많은 법문들, 양 원로교무의 일원상 설법들, 책에서 보았던 마음공부 얘기들, 벚꽃처럼 내 주변을 흩날리고만 있던 그 많은 얘기들이 마음으로 살포시 내려와 앉는 느낌이었다.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겉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마늘을 까는 일들이 왜 '사상선(事上禪)'이라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일하고 있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공부하는 선이구나'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이후 내 마음에 자리한 유무념은 '관조(觀照)'이다. 소태산대종사께서 원기26년 1월, 게송을 내리신 후 설하신 〈대종경〉 성리품 31장에는 "유(有)는 변하는 자리요 무(無)는 불변하는 자리나, 유라고도 할 수 없고 무라고도 할 수 없는 자리가 이 자리며, 돌고 돈다, 지극하다 하였으나 이도 또한 가르치기 위하여 강연히 표현한 말에 불과하나니, 구공이다, 구족하다를 논할 여지가 어디 있으리요. 이 자리가 곧 성품의 진체이니 사량으로 이 자리를 알아내려고 말고 관조로써 이 자리를 깨쳐 얻으라"고 밝혔다.

그냥 가만히 들여다 본 것 뿐이다. 문답감정 시간에 물어볼 질문이 생각나고 물어볼 스승이 있다는 것도 너무 감사하고 머리에만 들어있던 말들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 참 편안하고 시원해졌다.

일원상의 진리와 사상선, 그리고 수심결의 간단한 교리강해가 참으로 무서운 공부임을 알게 됐다. 또한 원불교 훈련의 효시인 만덕산 초선성지, 그 자체만으로도 공부의 정로를 걷게 하는 기연이 된다. 그저 걷고 바라볼 뿐인데도 괴롭혔던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다.

교단의 성지는 이렇게 평이간명한 훈련법이 그대로 실천되는 도량으로 자리하길 바란다. 다른 곳에서 공붓길을 찾으로 해메지 않아도 된다. 일원상 진리를 바로 묻고 바로 답하는, 그리고 온종일 성지를 순례하며 마음을 바라보게 하는 힘속에, 스승은 이미 그곳에 있다.

돌아오는 마지막 날 새벽 초선지에 올랐다.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준 모든 은혜에 감사하고, 경계가 올 때마다 안으로 시선을 돌려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가만히 지켜보며, 원래 그 마음자리 일원상으로 돌아가겠다고 기도했다. 언니와 나는 10월에 다시 만덕산을 찾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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