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지난주에 '1분선'영상을 보고 명상 해본사람 손들어 볼까?" 역시 서로 눈치만 보고 웃고 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럼 지금 하고 수업 시작하도록 하자."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나레이션에 따라 학생들은 허리를 바로 세우고, 명상을 시작한다. 교화연구소에서 만든 '1분선'영상은 구성이 잘 되어있어 교당에서도 법회 시작 전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 몇 번의 수업을 통해서 이젠 제법 자세도 나오고, 명상하며 장난 하는 아이들도 줄어들었다.

"교무님이 언제 명상을 하고, 하게 되면 어떻게 된다고 했지?" "화가 나고 짜증날 때. 명상을 해요." "그러면 화나기 전의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간다고 했어요." "이야~ 박수, 잘했어."

아이들의 특성이 모두 다르다. 질문에 대답을 잘해서 칭찬을 받으려는 아이가 있는 반면, 전혀 관심 없고 도무지 집중을 안 하는 아이도 있다. 못하고 안하는 아이들을 지적하기 보다는 잘하는 아이들에게 칭찬과 관심을 주는 것이 수업 진행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은 많은 실패 속에서 얻은 교훈이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화나고 짜증났을 때만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계속 명상을 하고 있으면 화도 짜증도 나지 않겠네?" "에이, 그게 말이 되요?" "말이 되지~."

"그것을 무시선(無時禪)·무처선(無處禪) 이라고 한단다. 곧 시간과 공간에 간섭 받지 않고 마음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지?" "네~"

"잘 들어보렴. '응하여도 주한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 이해 되니?" 조금 어려운 말인데, 쉽게 알려줄게. 잘 들어봐. 우리가 육근(눈·귀·코·입·몸·마음)을 사용할 때 내 앞에 일어나는 모든 경계에 분별성과 주착심 없이 그 마음을 사용하는 것이란다."

우리는 단 한순간도 육근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몸을 쓰지 않더라도 머릿속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때에 일어나는 경계를 과거의 경험과 굳어진 업력으로 만들어진 분별성과 주착심으로 바라보고 대한다. 잘 해결될 수가 없다. 화가 나고 짜증이 안날 수가 없다.

〈정전〉 무시선의 강령에 '육근이 무사(無事)/유사(有事)하면 잡념을 제거하고 일심을 양성하며/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양성하라'했다. 일이 있고 없음을 떠나 분별성과 주착심 없이 두렷하고 고요한 본래 성품을 여의지 않는 것이 곧 무시선법이다.

이렇게 무시선으로 일심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내가 마시는 공기부터, 바라보는 모든 것들이 은혜 아님이 없게 된다. 상상만 해도 너무나 행복하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고 바로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어렵지도 않다. 가장 먼저 해야 할일이 일심을 양성! 호흡과 단전에 기운 주하는 단전주선이 기본이 될 것이다.

"그래도 어렵지? 걱정 말고 조금씩 공부해 나가보자!"

<김제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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