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秋雲路淨 한가위라 구름길이 깨끗하고
皎皎一輪圓 수레처럼 둥근 달 희기도 하여라
逸興只輸筆 흥이 다하면 붓을 들 뿐이니
耽看不用錢 탐내보아도 돈 한 푼 들지 않는구나
穿簾光瑣碎 발 사이로 들어온 빛은 산산이 부서지고
入戶影姸娟 창에 들어온 그림자 곱기도 하다
遮莫須臾玩 잠깐이나마 희롱하는 것을 막지 말아라
今宵隔一年 오늘 같은 밤은 일 년 뒤에나 오리니

'한가위 달(中秋月 2)'-이덕무(李德懋 1741-1793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덕무의 본관은 전주, 호는 청장관(靑莊館),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동하였으며 고증학을 바탕으로 백과사전적인 '청장관전서'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서자로 태어난 이덕무는 박제가,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란 시집을 중국에서 출판하여 조선 후기 사가시인(四家詩人)으로 널리 알려졌다. 서장관으로 중국에 가서 고증학 서적들을 들여온 이덕무는 북학파 실학자들과 규장각에서 도서편찬에 참여했다. 평생 가난하고 병약한 그가 일찍 죽자 정조는 장례비와 유고집인 '아정유고(雅亭遺稿)'의 간행비까지 내렸다.

추석달을 한시의 격조를 살려 노래한 위 시는 표현이 아주 능숙하고 회화적이다. 이덕무는 '기궤첨신(奇詭尖新)', 즉 기이하고 괴기하며 날카롭고 새롭다는 시풍을 이루었다지만, 스승 박지원의 평가처럼 조선의 풍토와 생활이 조화를 이룬 시는 '시골집에서(田舍雜詠)'이다.

나뭇잎 둘러싼 울타리 아래 누런 암소가 누워있고/ 하늘 맑은 날 넋들이 삐걱삐걱 볏단을 두드리네/ 서리 맞은 온갖 과일은 옻칠한 듯 울긋불긋 익어가고/ 아침 해를 식히는 새는 궁상각치우 소리로 지저귀네/ 잇닿은 밭두둑은 거미줄인 듯 올망졸망하고/ 이웃 마을들은 굴 껍질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네/ 나그네 수심 쫓으려 촌로와 술을 마시니/ 단풍 사이에 선 나는 귀가 붉어진 광인이구나

농촌에서 보고 느낀 바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성리학자들의 허례허식에 치우친 시적 기교에 대한 비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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