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온화한 기운이 감도는 9월이다. 이럴 때 가끔 밖에 나가보면 알곡이 여무는 계절을 실감한다.

이름 모를 들풀에서 조차 알알이 열매가 맺혀 있는 것을 발견한다. 풀잎들 또한 제 나름의 옷을 입고 있다. 마치 자연의 경이로움이 온 산천에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온 몸에 전율이 일 때도 있다. 그대로 받아들이니 그대로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을 일러 온전히 받아들임이라 말한다. 내면 에너지의 증폭을 하다보면 그 온전함이 몸 전체를 감쌀 때가 있다. 전에 보던 산천의 폭, 전에 듣던 소리의 높낮이, 전에 보던 사람들의 질량들을 체감하게 된다. 천지여아 동일체(天地與我同一體)의 심경을 갖는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학동 몽돌 해수욕장 근처에서 아침 햇살을 감상한 후 거제 남부면 저구리에 위치한 망산(397m)을 등반했다. 등반하면서 느낀 것은 망산이 나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정상부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대소병대도를 비롯 다도해의 절경들이 보였다. 몸의 방향에 따라 장사도, 홍도, 매물도 등을 볼 수 있었다.

흰구름 둥실 떠 있는 아래에 주변 산, 항구, 해수욕장의 모습도 보였다. 오죽했으면 바다조망 제일명산, 천하제일경이라 했겠는가. 비록 에너지의 이끌림에 의해 망산에 올랐건만 세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아는 계기가 됐다.

한동안 망산에 머물면서 자연과의 에너지 교류는 그냥 되어 지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우주는 각성을 하고자 하는 공부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도와 준다는 사실이다.

그 도움을 받으려면 순간 순간 다가오는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진리는 무언가를 주려면 어떻게 헤쳐 나가는가를 본다. 괜한 오해를 받게 만들기도 하고, 비난을 받게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욕을 듣게 만든다. 아주 몹쓸 평가를 받게 한다. 심지어 죽지 않을 만큼의 고통을 준다. 단맛만 주는 것이 아니라 쓴맛도 준다.

이 시험을 통과하면 우주의 진리는 묘하게도 공부인들이 방향로를 찾게 해 준다. 밝음을 더해 준다. 한 단계의 높은 에너지의 질량을 선물한다. 그 선물은 소중한 만큼 감사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와 함께 몸의 반응에 주시를 해야 한다. 몸의 반응을 통해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다시 되돌아 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문해야 한다.

공부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이 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이다. 아픔으로 기쁨으로 나타나는 몸의 반응에 주시하다 보면 해답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공부 고비와 몸의 반응을 성찰하면 또 다른 세계를 보고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그럼에도 일부 공부인들 중에는 열매를 쉽게 습득하려는 경향이 있다.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몸으로 체득되지 않은 이론들이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다.

각성에 바탕한 가르침과 달리 생각으로 습득한 그 이론들이 깨침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는지 반조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증득의 소중한 경험들을 하게 된다.

대종사께서는 이에 대해 〈대종경〉 부촉품 11장에서 유감되는 세가지를 제시했다.

"내가 오랫동안 그대들을 가르쳐 왔으나 마음에 유감되는 바 셋이 있으니, 그 하나는 입으로는 현묘한 진리를 말하나 그 행실과 증득한 것이 진경에 이른 사람이 귀함이요, 둘은 육안으로는 보나 심안(心眼)으로 보는 사람이 귀함이며, 셋은 화신불은 보았으나 법신불을 확실히 본 사람이 귀함이니라."

이제는 갈수록 체험과 실증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진리공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을 가지면 보이고 느끼게 되어 있다. 관심을 가지면 진급의 길도 열린다.

증거하고 증거하다 보면 결실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이 일이 자신은 물론 교단에 법풍을 진작시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제는 갈수록 체험과 실증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여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신현교당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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