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99년 4월3일 밤11시2분, 적막한 교무실에서 마음일기를 쓰기 시작하다.

마음일기…. 마음은 감정, 기억, 생각 등이 깃들어 숨 쉬는 곳이며, 일기는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그 날 나의 감정, 생각, 느낌 등을 비밀스레 기록하는 글이다.

그렇다면 마음일기는 내 생각, 감정, 기억, 느낌을 기록하는 것이다. '뭘 써야 할까?'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시작은 간단하게 평소 일기 쓰듯이 쓰기로 결심했다.

하루가 끝나간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오늘도 어두운 밤이다. 옛날에 할머니가 세월이 물레살 같다고 그러셨는데 요즘 부쩍 느낀다. 너무 빨리 늙는 것 같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새로운 일들이 항상 날 기다린다.

"효령쌤, 빨리 와요! 제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잖아요." 재잘거리며 말 안 듣는 아이 같다. 언제쯤이면 머릿속에 모든 일이 조감도처럼 그려져서 무슨 일이든 척척해내는 수퍼우먼이 될 수 있을까?

3월 초에 '한달 쯤 열심히 배우면 학교 돌아가는 구조가 좀 보이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턱도 없는 소리다. 1년을 열심히 하고 나면 내년에는 이 일들이 남의 일 같지 않고, 내 수족과 같이 파악될까? 일을 잘하고 싶다.

지금 이곳에서 내 모습은 마치 부장과 교감선생이 떠 먹여주는 음식만 먹고 있는 갓 돌 지난 아이 같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내 자신이 자꾸 작아진다. 마음도 머릿속도 복잡하다. 이것이 바로 '경계'인가보다. 그래서 결심했다. '여유'를 갖기로….

어느 날 교장선생이 말씀했다. "선생님들 여유를 갖으세요. 아이들에게도 여유를 주세요. 여유는 준비에서 나옵니다. 명심하세요." 준비 된 자는 여유롭다.

나 역시 여유로운 여자, 여유로운 선생, 여유로운 스승이고 싶다. 경계와 여유를 통해 내년 이맘쯤엔 이랬던 기억조차 희미해져 '내가 언제?'라고 생각을 하며 또 다른 치열함 속을 달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희극이자 비극이다. 치열하게 여유롭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한다. 내 품속엔 무럭무럭 자라나는 120명의 학생들이 있다. 화장을 진하게 한 내 얼굴보다 내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내 뒷모습을 보고 커가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앞모습이든 뒷모습이든 걸어온 내 삶의 길들이 자랑스레 보여질 그런 업적들만 남기려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나는 나지만, 나만의 것은 아니다. 나는 성지송학중학교의 학생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고, 고스란히 모습을 비추고 있는 거울이기도하다. '그래, 해보자. 이왕에 해야 할 일이라면 즐겁게, 완벽하게, 난 나를 믿는다.'

위 글은 나의 마음 일기의 첫 페이지로 다시 한번 열어보니 처음 마음 일기를 쓰던 그 때 그 날이 생각났다.

어느 한가지의 에피소드를 전하기보단, 우리에겐 언제나 매일 매일이 새로운 에피소드들이기 때문에 성지송학중학교로 첫 부임한 교사 김효령으로서의 느낌을 지면에 그대로 전하고자 결심했다. 그리고 그 날의 일기를 다시 읽어 보며 '아, 내가 저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구나'라고 나의 몇 달 전 과거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누군가를 위한 글이 아닌 자위의 글이 되었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초심을 잃지 않는, 아니 자신의 초심을 더 굳게 다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오늘도 나는 성지송학중학교에서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의 합창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감한다.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의 가슴 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어질까?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즈음, 아이들에게 한 발짝 더 따뜻하게 다가가기 위해 오늘도 나는 식었던 마음과 손을, 그들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따뜻하게 데워본다.

생각·감정·기억·느낌을
기록하는 마음대조일기
또 다른 나의 모습인 학생들,
초심 굳게다지는 계기 돼


<성지송학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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