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圖縹渺梵王宮 부도의 모습은 아득해라 부처의 집일지니
簷馬丁當積翠中 처마 끝 풍경 소리 푸른 숲에서 울리는 구나
貝葉千卷散花雨 다라수 잎에 새긴 수많은 경전은 꽃비 되어 흩어지고
茶聲一沸悟松風 찻물이 한 번 끓자 솔바람 소리 느끼게 하네
歸禽入遠無多點 돌아가는 새들은 멀리 들어가 몇 점 아니 남아있고
落日盈空摠是紅 지는 해만 하늘에 가득 차 세상이 오통 붉어라
坐久不知雲繞膝 앉은 지 오래되어 구름이 무릎 덮은 줄 모르겠고
半根苔石數株楓 바위에 반쯤 뿌리 내린 이끼와 몇 그루 단풍나무뿐이네

*부도(浮圖)-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하는 탑
*패엽(貝葉)- 고대 인도에서 불경을 새기던 다라수의 잎

'법화암(法華菴)'- 박제가(朴齊家 1750-?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제가의 본관은 밀양, 호는 초정(楚亭) 또는 위항도인(葦杭道人), 조선 후기 사가시인(四家詩人)이며 정치 사회제도의 모순과 개혁을 다룬 '북학의(北學議)'를 저술하였다.

승지 박평의 서자인 박제가는 11살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가난하게 살면서 박지원에게 글을 배우고, 1788년 채제공을 따라 북학파 이덕무와 함께 연경에 가서 석학들과 사귀면서 배운 선진문명을 담은 '북학의'을 지었다.

정조에게 발탁된 그는 이덕무, 유득공과 함께 초대 검서관이 되어 13년 동안 규장각에서 많은 책을 간행하면서 청나라에 여러 번 다녀왔다. 박제가는 상공업의 장려, 신분차별 타파, 해외통상, 선교사의 초청, 과학기술교육의 진흥 등 국력 향상의 방안을 제시했지만, 지배층의 반대로 좌절되었으며 당쟁에 휘말려 유배되고 1805년에 풀려난 뒤 죽었다.

위 시는 남한산성 밖의 법화암을 보고 쓴 작품인데, 시적 감성이 예민하고 표현력이 능숙하다. 박제가는 인품이나 재주가 뛰어났던지 청나라의 화가 나빙은 초상화와 함께 시 한 편을 써 주었다.

삼천 리 밖에서 오신 손님 마주하고/ 좋은 선비 만남 기뻐 초상화를 그리노라/ 사랑스런 그대 자태 무엇에 비교할까/ 매화꽃 변한 몸이 그대인 줄 알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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