嗟哉圭竇士 탄식하노라, 가난한 선비여
所守頗能深 마음가짐만은 자못 깊게 할 수 있도다
屋老全依樹 집이 낡아서 온통 나무에 기대어
虫寒稍入衾 벌레도 추운지 차츰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廚人憂米價 부엌 사람은 쌀값을 걱정하는데
江客話琴心 강호의 나그네는 거문고의 운치를 말한다
季子歸來日 막내아들이 돌아오는 날
如何誇有金 벼슬하였음을 자랑할 수 있을까

'가을밤의 느낌(秋夜雜感)'-이덕무(李德懋 1741-1793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18세기 정조 시대에 문예부흥을 빛낸 북학파(北學派)였다. 홍대용이 천문지리, 박지원이 문장에 능숙하고, 박제가가 사회개혁, 유득공이 역사에 뛰어났다면 이덕무는 고증학(考證學)에서 탁월했다.

서자이고 가난했던 이덕무는 임금의 총애를 받았지만 세도가를 멀리하고 부귀와 권력을 탐내지도 않으면서 나름대로 가난의 철학을 평생 지니고 살았다. '청장관전서'에서 그는 '최상인은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고, 그 다음은 가난을 잊어버리고, 최하등인은 가난을 부끄러이 여겨 감추고 타인에게 호소하다가 가난에 짓눌려 끝내 가난의 노예가 되고 만다. 더 못난 사람은 가난을 원수처럼 여기다가 그 가난 속에서 죽어간다' 고 했다.

위 시는 가난한 선비의 삶을 사실적인 수법으로 소탈하게 고백한 시이다. 그는 자기 집을 '선귤(蟬橘)'이라 했는데, 매미(蟬)의 허물이나 귤(蟬)의 껍질처럼 집이 작고 초라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시 '11월 14일 술에 취해서' 는 가난을 달관한 선비의 의연한 자세를 보여주는 작품인데, 천민자본주의의 시대를 사는 우리 가슴 한쪽이 부끄러움으로 저려온다.

깨끗한 매미와 향기로운 귤을 마음에 간직하니/ 세상사 시끄러운 일 내 이미 잊었노라/ 불을 공중에 살라본들 저절로 꺼질 것이고/ 칼로 물을 벤다 한들 다시 무슨 흔적이 있겠는가/ 어리석다는 한 글자를 어찌 모면할까 마는/ 온갖 서적 널리 읽어 입에 담을 뿐이네/ 넓고 넓은 천지간 초가집에 살며/ 맑은 소리 연주하며 밤낮을 즐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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