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종사는 정산종사 열반 후 대중의 존경과 지지를 한 몸에 받아 주법(主法)의 지위에 올랐다. 대산종사는 대종사와 정산종사의 유업을 계승하여 교단을 크게 부흥시켜 반석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종법사의 막중한 책임을 다하면서도 항상 소동(小童) 소제(小弟) 소자(小子)임을 자처했던 속깊은 마음공부인이다. 그 많은 사람들을 접견하고 복잡다단한 일들을 처리해야하는 처지에서도 마음은 항상 고요함을 잃지 않았으며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의 생활은 검박함 그 자체였다. 불타는 정열로 교단사를 크게 멀리 추진하고 하해(河海)와 같은 큰마음으로 중생을 품에 다 안으면서도 마음은 정체가 여여했으며 한적한 체성에 머무르시면서도 교도 한 사람, 작은 일 하나라도 게을리 하거나 소홀이 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부지런 딴딴'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와 같은 세간의 평을 받는 것에 대하여 부처님은 '부지런 딴딴'이라며 싫어하지 아니했다. 이처럼 대산종사의 수행은 이사(理事)를 자유로 넘나들고 대소를 함께 하며 동정이 한결같고 일과 일 사이를 종횡으로 처리하되 걸리고 막힘이 없었다.

한 때 더운 여름철이면 완도 소남훈련원에 많이 머물렀다. 교도가 희사한 황무지 땅에 제자들과 더불어 손수 나무를 심고 가꾸며 계곡에 돌을 가져다 야단법석을 만드는 등 수많은 법문과 일화를 남긴 도량이다. 숙승봉(宿僧峯)과 업진봉(業盡峯)을 배경으로 한 산자락을 스스로 만불도량이라 이름하고 대중과 더불어 법을 설하고 나누기를 즐겨했다. 숙승봉은 스님이 누워 잠자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그 옆에 업진봉은 업을 다 마친 봉우리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대산종사는 법을 갈구하는 재가 출가 공부인들에게 두 봉우리를 가리켜 말씀하곤 했다. "숙승(宿僧)은 쉬어가는 스님이라는 뜻이다. 스님이 입정 삼매에 들어 몸과 마음을 크게 쉬는 대휴대헐(大休大歇)의 경지를 이루었구나. 업진은 본래 막히고 걸릴 것도 없는 청정한 자성에 들어 업을 다 했다는 뜻이다."

훗날 대중과 함께 숙승봉에 올라 멀리 남쪽 바다 다도해를 바라보면서 감상을 글로 지어 발표했다.

'숙겁에 쉬어가는 스님네들! 스님네들! 삼세 업장이 다 쉬었으니 개운하리! 개운하리! 다실랑 짓지 말고 깨끗하게! 다실랑 짓지 말고 깨끗하게!'

이 시문은 작곡하는 후진들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져 지금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어디를 가거나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사시정진의 일과를 철저하게 지켰다. 새벽 시간은 선정일과로 오전에는 교단의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는 사상선 시간으로, 오후에는 찾아오는 손님들과 함께 산책하면서 야단법석을 차리고 법을 설하는 설법 삼매의 시간으로, 그리고 다시 저녁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한 생명의 기운을 함양하는 입정 삼매의 시간으로 정하시고 지키기를 빈틈이 없었다. 특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저녁시간에는 찾아오는 손님 접견도 사양하고 급한 일이라도 뒤로 물리면서 수도인 본연의 모습을 놓지 아니했다.

동중정 정중동으로 일상삼매 일행삼매를 온 몸으로 보여주니 동하여도 분별에 착이 없고 정하여도 분별이 절도에 맞음이 이와 같았다. 우리들의 교화장이 뭇 중생을 품에 안는 분주하고 통 큰 보은의 일터가 되고 한 편으로 입정삼매의 적멸보궁(寂滅寶宮)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와 같은 도량의 혁신이 개교 100년에 주요한 의제다.

<경남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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