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의 스트레스, 가족 삶의 질을 결정한다

▲ 해소되지 않는 직장내 스트레스는 분풀이로 사회적 범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장시간 노동 및 교대제
일·가정양립의 어려움으로
노동자 스트레스 높아
신체적·정신적건강 악화된다

우리나라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지만 일하는 환경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하게 건강이 훼손된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잘 알려진 바이다.

최근에는 한국 근로자의 노동환경을 감안한 스트레스 측정도구를 통해 한국 근로자의 스트레스 원인과 건강결과를 속속 밝혀 내고 있고, 특히 장시간 노동 및 교대제, 일·가정양립의 어려움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높아 근로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좋지 않다는 연구결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러한 연구의 결론은 일터의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 근로자가 건강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최근 발표된 고용정보원(2014)의 보고서 '소득과 시간빈곤 계층을 위한 고용복지정책 수립방안-림팁(LIMTIP) 모델의 한국 사례'에 의하면 시간빈곤층이 930만명이라고 한다. 이 보고서는 레비경제학연구소가 개발한 빈곤 측정 모델 림팁을 활용하여 소득빈곤 외에 시간빈곤을 측정했는데 '시간빈곤'이란 1주일 168시간 중에서 개인 관리와 가사·보육 등 가계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뺀 시간이 주당 근로시간보다 적을 경우를 의미한다. 빈곤하면서도 시간도 부족한 사람들이 최소한 1주일에 잠자고, 먹고, 쉬고, 가정을 돌볼 시간이 보장되지 못한 현실을 잘 분석하였다.

고달픈 한국 근로자의 삶과 낮은 건강수준을 다양한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지만 노동환경의 스트레스 요인이 가족과 다른 관계 및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연구가 된 바가 없다. 필자가 올해 실시한 프로젝트에서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40명의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면접하였다. 그 결과 일터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근로자가 가족에게 부정적 영향을 많이 미치고 있었다. 대체로 스트레스 받은 근로자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는데 표출형, 회피형, 문제해결형으로 표출형과 회피형 반응을 보이는 근로자 가족의 삶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표출형은 잔소리, 짜증과 화 내기, 표정으로 말하기, 울기,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며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힘든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장난치는 것, 농담하는 것, 너무 좋아하고 그러는데 이상하게 집에 들어가면 그게 안 돼요. 오히려 집에 들어가면 말수가 더 적어지는 것 같아요. 직장에서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밖에서 웃고 떠들고 하던 게 집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말수가 적어지고 뭔가 내심 속으로 '나는 지금 피곤하니까 건들지 마라' 라는 기운을 표출하는 것 같아요." 한편 직장을 다니는 젊은 여성의 경우에는 "직장에서 힘들어서 아빠한테 매일 같이 화를 냈던 것 같아요. 소리 지르고, 화내고, 가끔 물건도 집어던졌던 것 같고. 미치는 거죠. 나는 왜 아빠한테 이러는 거지? 내가 왜 이랬지? 이러면서 이렇게 가슴 아프게 후회 하면서 다음날 또 화내고, 또 막 뭐라 그러고…"라고 진술하여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고 있었다.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를 맡은 한 근로자의 경우는 "고객한테 안 좋은 소리 통보 받은 날은 완전 맥 빠지는 거죠. 다시 얼굴 볼 사람도 아니지만 굉장히 기분 나쁘고, 그런 날은 집에서 애들이 뭔가 눈에 거슬리는 짓을 했다, 그러면 인제 걔가 옴팡 뒤집어쓰는 거죠. 근데 애들이 둘 다 남자애들이다 보니 엄마의 기분이 저하 됐는지 어쨌는지 모르니깐 간혹 애들도 엄마는 당연히 밥해주는 사람 옷 빨아주는 사람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지쳐서 누워있는데, '엄마 밥', '밥 주세요'도 아니고, '엄마 밥', '엄마 준비 안했는데' 이러면 '왜 엄마 뭐했는데' 막 짜증부리고 그러면 걔가 인제 폭탄을 맞는 거죠. 인제. '너는 엄마한테 뭐 해줬는데, 내가 너 밥해주는 사람이냐, 너는 뭐를 엄마한테 잘해줘서 그런 소리를 하냐' 집중 포화를 받는 거죠."

한편 회피형은 몸 사리기, 가사 및 양육 회피, 미디어 중독, 일 중독, 대화 회피, 대인 기피, 음주, 흡연, 수면장애 등으로 나타났다.

"…들어오자마자 TV 틀어요. 여전히 그냥 게임과 TV와 함께 지내다가 12시까지도 그러고 있어요"라며 가족과의 대화나 관계가 단절되었다고 표현하였다.

"제 처도 직장에서 어려움이 있을 때 저와 이야기를 나누며 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저는 잘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저도 힘들어서 '그런 이야기 나한테 하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회사에 다 놓고 오는데 왜 그러냐'고 하죠. 그러면 처는 이런 것들을 꼭 당신이 해결해 달라는 게 아니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그것도 못하느냐. 이런 걸로 다툼이 될 때가 있어요"라며 부부간 위로와 의지가 안 되는 현실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 스트레스 표출형이나 회피형에 속하는 근로자들은 심하면 가족해체에 이르기도 한다.

반면에 어려운 일터의 상황에서도 취미생활과 노작을 하거나, 자기돌봄에 집중하거나, 가족과의 시간을 마련하고, 지역사회 활동 참여하거나 근로자 네트워크 및 종교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보다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근로자도 있었다.

"텃밭을 조그맣게 집 앞에 가꿔봤는데, 그런 것들이 최고인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우울증은 아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항상 하는 것들이 있었어요. 제가 굉장히 남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갑자기 십자수가 너무 놓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십자수 그거 한 판 다 놓고, 그리고 좋아하면 계속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딱 버려요. 아, 끝이다, 이렇게 생각이 되나 봐요. 그리고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아요. 그런 것들이 도움이 돼요."

멍하게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하거나 공동육아를 통해 마을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아버지의 자연스러운 육아 참여 독려로 가정 불화 줄여나가는 사람, 신앙생활을 통해서 가서 울기도 하고 욕하기도 하며 해소하는 사람도 있었다.

스트레스가 많은 일터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다양한 방식을 취하지만,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것은 표출형이나 회피형에 속하는 근로자의 반응이 가족내 긴장과 불안감을 조성하거나, 가족간 무관심과 소외를 낳고, 심하면 가족해체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녀양육에 있어 자녀문제를 방치·방임하거나, 자녀에게 강박적인 태도를 나타내거나, 힘든 일로 인해 양육태도가 부정적으로 변하기도 하여 아이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더 나아가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는 분노와 모욕의 일상화에 따른 분풀이로 사회적 범죄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일터가 온전하고 건강하여 근로자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법에 명시된대로 기업주가 그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

변화된 일터는 근로자의 건강뿐 아니라 가족과 우리 사회 전체에 중요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문제의 해결은 가족상담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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