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수첩

산청강가의 학교에 살면서도 강가에 나갈 여가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4학년 선생님이 2일간 출장이라 임시 담임을 맡게 되었다. 절호의 찬스를 놓칠세라 방과 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강가로 나갔다.

"선생님, 강가에 언제 와 보았는지 기억이 안 나네예."

경호강가에 위치한 학교이지만 여러 교육활동에 쫓기어 강바닥 돌멩이들을 만져본 기억이 없단다. 우리는 예쁘고 둥근 돌멩이를 주워 가족모습 꾸미기를 하기로 했다.

모두들 제일 예쁜 돌멩이를 고르느라 시간이 꽤 걸린다. 내가 보기에 참 예뻐 보이는 것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다른 돌멩이를 뒤적이는 아이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돌멩이로 가족을 꾸미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선생님, 저는 가족 수가 많아서…."
아홉 개의 돌멩이를 주워놓고 교실까지 가져갈 걱정을 하는 아이.
"너의 가족 반은 내가 모시고 갈게."
그 말에 힘 입고 조금 더 큰 돌멩이로 바꾼다.
돌멩이를 주워 긴 다리를 건너오는데 한 아이가 표정이 어둡다.
"저는 돌멩이가 너무 무거워서요. 할머니를 버리고 왔어요. 참 죄송하네요."
함께 사는 할머니를 가족에서 제외한 것을 마음 아파한다.
"그랬구나. 내가 돌멩이 하나 줄게. 할머니를 잘 모셔라."
그제야 환한 얼굴로 씩씩하게 걷는다.
"저는 우리 아버지가 떨어져 깨졌어요."
"교실에 가서 테이프로 붙이면 어떨까?"
"괜찮아요. 아버지는 보통 있으나마나 해요. 나만 보면 늘 야단만 치는 걸요."
가족 속에 아버지의 존재감이 적어 보인다.

아이들이 꾸며 놓은 돌멩이 가족을 살펴보는데 유난히 못나고 쬐그만 돌멩이가 있어 누구인지 물어 보았다. 동생이란다. 동생을 이렇게 못난 돌멩이로 한 이유가 있냐고 물으니 그냥 그러고 싶었단다. 그 돌멩이를 자기로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동생이 소중하기는 하지만 자기가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4학년이라 어려보이지만 가족에 대한 무게는 강가 돌멩이들보다 더 무거워 보인다.
돌멩이의 모습이 다 다르듯이 아이들도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못하는 어른들, 그들의 생각과 성장이 다를 수도 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똑같은 돌멩이의 모양으로 틀을 지어놓고 그에 맞지 않으면 혼내고 걱정을 한다. 제 각각의 모습 속에서 장점을 키워주고 단점은 채워주기보다 장점은 무시하고 단점만 두고 걱정을 하는 어른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매일 바빠서 얼굴을 잘 볼 수가 없어요. 어쩌다 보게 되면 짜증을 내요. 공부하라고 말만하고요. 우리 엄마는 잔소리 쟁이에요. 나참…."

▲ 유난히 눈에 띄던 돌멩이 가족. 화난듯한 한 아이의 돌멩이 얼굴이 익살스럽다.

엄마 얼굴을 꾸미면서 투덜거리는 아이의 마음 속에 엄마에 대한 무게가 실린다.
아이들이 정성껏 꾸며놓은 돌멩이 가족을 보면서 커다란 부모의 무게에 눌려 있는 작은 아이들을 앞쪽으로 내어 보았다. 훨씬 행복해보였다.

"저의 소망은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에요."

아이들이 부모와 가족 걱정을 더 많이 한다는 걸 돌멩이 가족을 꾸미면서 새삼 알게 되었다.
유난히 눈에 띄는 돌멩이 가족이 있어 사진으로 갖고 왔다. 한 아이의 얼굴이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을지 각자 생각해 보기 바란다.

<도동 초등학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