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읽어내는 작가정신

세상 바라보는 통찰력 선물
가슴에 새기는 기자 많기를


개코원숭이 흉내를 잘 내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한 개그맨이 있다.

이 개그맨이 한번은 어떤 실험을 해본다. 같은 시간 서로 다른 자신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한 곳에는 '개코원숭이를 할 때 나는 행복하다'라고, 다른 한 곳에는 '개코원숭이를 하는 게 너무 싫다'라고 써서 업로드를 한다. 어떤 결과가 있었을까? 잠시 후 '○○○, 나는 개코원숭이 할 때 너무 싫다'라는 기사의 타이틀이 각종 포털의 메인에 등장하였다고 한다.

사회적 정보 매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우리는 엄청난 양의 기사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접하고 있다. 이런 매체의 증가는 기자라는 직업의 증가도 낳았다고 본다.

영업 실적을 올리듯, 조금 더 자극적인 내용으로 자기 기사의 조회수를 올리고 대중의 이목을 끌어야 하는 것이 기자들의 중요한 직업적 소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자라 하면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정확한 사실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기에 이 과정에서 취재를 받는 사람과 그 기사를 전달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직업윤리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올 한해를 돌아보면 유난히 언론이 대중들의 공분을 산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국내외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전달하면서 서로의 경쟁에 더 치중하여 그런 직업윤리의 상당부분이 훼손된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죽하였으면 '기레기'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였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직업의 본분에 충실하며 힘든 곳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기자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존경심이 우러난다. 그야말로 기자정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자나 작가처럼 글을 쓰는 직업의 고귀성을 인정하여 그들의 가치를 높게 생각하는 성향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풀어내는 시대정신이 대중에게 전달되면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 역할을 하며, 더 나아가서는 살아가는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의 역할도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정신만큼 중요한 것이 작가정신이다. 작가정신의 중요성을 이야기 할 때 누구의 예를 들 것도 없이 나의 경우 청소년기 때부터 많은 작가들의 시와 소설을 접하며 가치관을 확립하는데 큰 영향을 받았다.

지금도 세상사에 찌들거나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며 그 누구에게서도 받지 못한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그럴 수 있는 것은 내가 작품 속에 드러나는 작가정신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작가정신이라 함은 시대를 읽어내는 안목이기도 하고, 언어로 풀어내는 이야기의 흥미도 이기도 하며, 내가 보지 못하던 세상을 보게 해주는 통찰력이기도 하다.

또한 그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촌철살인으로 일침을 가하는 그 기개에도 있다.

십대 아이들이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여 그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콘서트에 다니듯, 나는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의 이력을 알아보고 그의 책은 모조리 사 읽어 보며, 혹여나 작가와의 만남과 같은 행사가 있으면 쫓아다니곤 한다. 그들의 작가정신에 매료되어 본받고 싶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다사다난 했던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다가오고 있다. 새해에는 〈정전〉 솔성요론에 나와 있는 13조 '정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기 싫어도 죽기로써 할 것이요'와 14조 '부당한 일이거든 아무리 하고 싶어도 죽기로써 아니할 것이요'를 가슴속에 새기는 기자와 작가들이 더욱 많기를 열혈한 독자로서 바래본다. <강북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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