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주인으로 살고 있는지 묻는 그 만의 철학

최근 우리 사회에 인문학 바람이 분 배경에는 '이 복잡하고 불합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서점에서는 고전이 팔렸고, 더불어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인문학, 철학 서적도 쏟아져나왔다.
철학자 강신주는 그 정점에 있으면서도, 숱한 현장을 찾아 강단에 서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 유명세에 연연하지 않고 소신을 지켜 존경받고 있다.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삶은 원래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용기로써
그것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증명해야하는 것이다."


직설화법, 돌직구. 철학계의 슈퍼락스타
돌직구, 직설화법의 강의와 상담 '거리의 철학자' 강신주. 그에게 그 별명이 붙어다니는 데는 다상담의 공이 크다. 2012년부터 2년동안 매달 열린 '다상담'은 사랑, 고독, 일, 소비, 가면, 꿈, 종교와 죽음 등을 주제로 강의와 상담이 펼쳐진 시간이었다. 거친 반문과 군더더기 없는 조언 덕분에 그는 '철학계의 슈퍼락스타'라는 특이한 수식까지 얻었다. '몸이 예전같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질문자에게 "받아들인다는 건방진 소리 말라. 그냥 당신의 몸이다. 예전의 잔상들로 현재를 부정하는 거다"는 식이다. 심장을 찌르는 듯한, 순간 발가벗겨진 듯한 당혹감 속에 질문자들은 그의 진의를 읽고 화두를 안았다.

그는 "그렇게 얘기하는건 물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 뭔가 이야기를 해줘야하기 때문에, 충격이나 자극을 줘서 흔들어야 한다"며 "애정이 있었으니 가능했다"고 추억했다.

실제로 한달에 한번 다상담을 위해 그는 아낌없이 에너지를 쏟고 있다. 오후7시30분에 시작된 상담은 새벽 너댓시에 끝나기 일쑤였다. 그는 "기본적으로 상담은 인간 대 인간으로 정직하고 대등하게 해야하는데, 많이들 권위적이고 일방적으로 진행한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모두가 세우려 했을 때 간신히 유지되는 것이 민주주의
단어만으로도 지루하고 팍팍한 철학을 그는 왜 우리 삶으로 가까이 가져왔을까. 왜 우리는 강신주의 철학에 열광할까.

그에게 철학은 '진짜'와 '가짜'의 문제다. 진짜로 살고 있느냐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들이 진실인지 허위인지를 묻는다. 대화를 통해 상대에게 '진짜로 살고 있느냐 아니냐'를 반성하게 하는 것, 그것이 그가 말하는 '철학자이자 선생의 역할'이다.

sbs '힐링캠프'에 나와 유명해진 그의 조언 'No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우리가 Yes라고 할 때는 진짜 원해서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배워서인지 모른다. 그러나 No라고 할 때는 진짜 자신이 No를 원하기 때문에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의 주체, 주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역시 No라고 말할 수 없는 것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주체, 주인의식은 곧 '한번도 체제로 실현된 적 없었던' 민주주의를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한사람 한사람이 강력하게 세우려고 했을 때 간신히 유지되는 체제'이며 '1만명이 시위를 할 때 숟가락 얹듯 하는 게 아니라, 오직 1명이 시위를 할 때도 내가 가는 정도의 주체성'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공교육이나 자본주의로부터 학습된 대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의식없는 삶이 그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우리 사회의 한계다.

사람들이 "아닌 걸 알겠는데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식의 고민에 대해 그는 일침을 가했다. "그건 제대로 모르는 것이며, 진짜로 알면 실천할 수 밖에 없다"며 '진지(眞智, 참된 앎)'를 들어 설명했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불합리들에 대해 진정으로 안다면, 우리는 주체로써 목숨을 걸고 행동하고 있을 것이다. 참된 앎에는 바로 '절실함'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는 죽기로써 실행하고 불의는 죽기로써 버려야한다'는 대종사 법문의 깊이가 새삼 다가오는 얘기다.

"나는 진보적인 사람이다"고 말하는 그는 어느 쪽을 강요하거나 권유하지는 않는다.

그는 "진짜로 알고도 용기가 아닌 비겁함을 택한다면 그것도 존중받아야 한다"며 "문제는 알지도 못하고 내가 어느쪽이다, 어느편이 맞다고 생각하는 착각이나 허영이다"고 밝혔다. 철학자로서의 역할은 '알고 사는 것'의 여부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며, 그 너머의 선택은 모두 당사자의 몫인 것이다.

종교는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 제공해야
그는 스테디셀러 〈강신주의 감정수업〉에 이어 최근 펴낸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로 또 한번 지평을 넓혔다. 선불교의 대표 화두인 무문관(無門關, 문이 없는 관문)을 담아낸 이 책은 자신만의 삶을 살아 내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그는 "48개의 화두를 어떻게 뚫는 지는 백이면 백 전부 다르다"며 "이 책은 내가 어떻게 뚫어냈는 지에 대한 기록으로 정리한 것이다"고 말했다.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학적 사유를 담아낸 그. 그러나 정작 자신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일부 종교에 대해서는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그에게 종교란 무엇일까.

그는 "종교는 속물적인 세계 너머의 성숙하고 자각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줘야한다"고 밝혔다.

성숙한 세계란 깨달은 자가 보는 세계이며, 영성과 희망이 있는 개념이다. 당장의 현실적인 고민이 아닌, 더 큰 질문과 성찰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곧 종교다.

원광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만난 교무들에 대해 "불교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삶이 고통이라는 불교 교리에 비해 낙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세기를 준비하는 교단에 대해 두가지 조언도 덧붙였다.

"인간을 위해 자본과 싸워야 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어 "종교인들은 기본적으로 사랑을 하는 사람인데, 이를 위해서는 자신부터가 더 '진짜 '로 살아야한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야 덜 아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남을 사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교리나 율법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신을 고민할 시간을 뺏는 일부 현상에 대한 우려도 덧붙였다.

용기있는 사람이 진정 자유로워
마지막으로 〈원불교신문〉 독자들에게 인사를 부탁했다. 그는 "사랑과 용기와 자유는 같은 것이다"며 "특히 중요한 것은 용기다. 용기있는 사람이 진정 자유로우며, 사랑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용기란 원래 있거나 없는 개념이 아닌, 우리가 증명해가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살면서 매번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 위기에서 한걸음씩 나가면서 용기를 증명하게 된다"고 재차 설명했다.

인터뷰가 투박하고 거칠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은 완벽히 틀렸다. 철학자와의 시간이 어려울 거란 생각도 마찬가지다. 눈을 바로 보고 쉬운 언어로 하나하나 풀어 일러주는 그는 "사람 만나기를 꺼린다"는 말과는 다르게, 사람에 대한 애정이 절절히 배어나왔다. 철학자와 인문학자, 강사 등의 이름보다도 '나는 글쟁이'라고 단언하는 그, 매일 자정부터 아침까지 오롯이 글을 쓰며 철학을 지상으로, 우리네 삶 사이사이로 끌어오는 힘도 그의 애정과 사랑, 용기에 있었다.

그의 한 마디는 새해를 맞는 지금도 오래 가슴을 울린다. "삶은 원래 고통스럽지만, 우리는 용기로써 그것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증명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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