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사로 10여년을 재직하며 독서교육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학창시절 책읽기를 좋아했고, 문예반 활동을 하며, 국어교사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

살면서 문제에 부딪치면 책에서 답을 찾곤 한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영상매체에 익숙하다 보니 책보다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선호한다. 우리 때와는 정보를 접하고, 구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독서교육을 하려니, 응용의 묘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낀다. 우리 시대의 생각과 방법으로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다. 아이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선호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찾아보게 된다.

개그콘서트를 보면 비틀즈의 노래 렛잇비에 맞춰 풍자하는 코너가 있다. 풍자와 해학에 관해 수업을 하며 이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패러디를 한 적이 있다. 모듬별로 4소절씩 만들어 발표하도록 했다. 친구, 다이어트, 학교, 사회 구조, 대통령 등 아이들이 보는 세상은 광범위했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아이들의 생각을 가까이에서 엿볼 수 있었다.

시수업을 하며 시를 낭송해 카톡으로 보내게 하니 어렵지 않게 동참했다. 꼭 암송하지 않아도 좋으니 감정을 넣어 천천히 음미하며 낭송하기를 주문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어색하다며 몇 번이고 다시 녹음해서 보내주었다. 교실에서 시낭송을 할 때는 감정보다는 암송에 초점을 두게 된다.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외우는 게 최선인줄 알았다. 방법을 달리하니 시를 감상하고 암송의 묘미를 알아간 것 같아 오히려 족하다.

또 한 가지는 모방시다. 창조는 모방에서 비롯된다. 시를 읽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 재창작을 한다. 시콘서트를 통해 시화를 만들고 전시를 하며 두루 두루 감상하도록 한다. 아하! 효과다. 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아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라고 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국어시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책발표다. 프리젠테이션으로 책에 대한 정보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발표는 과정은 힘들어도 의미있는 시간이다. 아이들의 불평도 만만치 않다. 졸업생은 이 시간을 떠올리며 '내가 읽은 책을 발표하려니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또 '타인의 책도 공유할 수 있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원성이 시작되면 선배들의 평가를 들려주곤 한다.

학생들의 이런 결과물은 나의 소중한 자산이다. 연도별로 시화집을 만들어 보관했다. 그리고 다음 해 전년도 작품을 보여주며 감을 살리려고 했다. 새로운 것에 대해 주저하는 마음,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표본을 보여주니 쉽게 접했다.

아이들이 독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독서=독후감, 이런 단편적인 구조로 접근하니 아이들에게 독서는 마냥 따분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독서교육의 꽃은 뭘까? 무작정 책을 읽고 토론을 하자니 아직 훈련이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먼나라 이야기였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도서를 선정하였다. 이왕이면 흥미있고 이야기꺼리가 왕성한 것으로 골랐다. 학교폭력, 미혼모, 부모와의 갈등 등 공감이 가는 도서를 스스로 고르게 하고 좌장과 서기가 되어 토론을 이끌도록 했다. 수준은 높지 않아도 매 달 한 권씩 읽고 토론과정을 거쳤다.

친구들과 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네모는 독서토론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자신감을 회복하고 열성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자기 표현에 서툴렀던 세모는 토론시간만큼은 진지했다. 표현은 거칠었지만 어눌한 말투로 자기만의 생각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책 한권 읽지 않고 남의 말에 맞장구치거나 실없는 소리로 친구들의 핀잔을 받던 둥글이. 타인의 생각을 듣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싶어 무임승차를 허락했다.

아이들은 경험치만큼 성장한다. 직접이든 간접이든 보고 듣는 만큼 쌓이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대할 때 머리로 생각하고, 몸으로 체득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본다.

책을 싫어하던 아이들의 마음이 열리고, 몸이 움직였다. 감정은 풍부하나 감성은 메마른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책은 아이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좋은 재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좋은 재료도, 맛있는 음식도 먹어봐야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영상에 익숙한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좋은 책과의 만남을 추진하는 것이 이 시대 국어교사의 갈 길이 아닌가 싶다.

<영산성지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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