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58년,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출렁이고 산에는 단풍이 한창인 아름다운 계절이었다. 임신 4개월째 접어든 아내는 이른 아침부터 하혈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뱃속의 아이를 잃게 되었다.

유산을 한 아내는 몸속의 어혈을 다 배출해야 한다며 내게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오라고 부탁했다.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읍내 한약방에 가서 약을 지어다 주었다. 그리고 나는 예회에 참석하기 위해 바삐 교당으로 달려갔다.

내가 예회를 보는 동안 아내는 약을 달여 먹고 마구 피를 쏟아냈다. 그렇게 아내가 눈을 감고 거의 죽어가고 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큰딸 영선이와 작은딸 만신이는 서로 부둥켜안고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었다. 혼미한 정신을 가다듬고 겨우 눈을 뜬 아내는 큰딸에게 빨리 교당에 가서 아빠를 데려 오라고 했다. 교당까지 찾아온 큰딸과 나는 당장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방은 피 바다가 되었고 피투성이가 된 아내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채 혼절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임신 4개월이 제일 위험하다고 한다. 놀란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택시를 불러 곧장 아내를 읍내에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 당시만 해도 시골 병원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고, 비상시에 쓸 혈액을 보관하기란 거의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법신불 사은의 감응이었던 걸까. 마침 전날 아내에게 맞는 혈액이 병원에 들어와 보관 중이었고, 아내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참으로 천우신조(天佑神助)한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나는 왜 피를 흘리고 사경을 헤매는 아내를 두고 오직 예회에 참석할 생각만 했던 걸까? 그 일이 과연 잘한 것일까? 잘못한 것일까? 만일 교당에 가지 않고 아내 옆을 지켰다면 어땠을까?

나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변함없는 믿음이 있다. 살갑게 아내를 보살피지 못한 남편으로서의 부족함은 있었으나, 항상 빠짐없이 예회에 참석한 정성이 법신불 사은의 은혜를 입게 해주었다고 믿는다.

예회는 법신불 사은의 은혜를 되새기고 인생의 행로에 등불이 되어 주는 내 삶의 행복의 근원이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여러 가지의 선택이 주어졌을 때, 나는 변함없이 예회에 참석하는 행복을 선택할 것이다.

<감곡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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