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걸음 같은 경건함 묻어나와

▲ 〈성가〉 4장 둥그신 그 체성이여(법신불찬송가).
4장) 둥그신 그 체성이여(法身佛讚頌歌)

                           송규 작사 / 이흥렬 작곡

1. 둥그신 그 체성이여 사은의 본원이시오
   여래의 불성이로다 언어의 길 끊였으나
   만덕이 구족 하시고 유무를 초월하시어
   여여히 독존하시네

2. 둥그신 그 묘용이여 자연의 조화이시요
   인과의 법칙이로다 공유로 은현하시와
   고금을 통리 하시고 음양이 상승하시와
   죄복을 보응하시네

후렴 
   아 - 법신불 일원상
   만유의 어머니시니 믿음도 임밖에 없고
   진리의 거울이시니 표준도 임밖에 없네

〈성가〉 4장 법신불찬송가는 정산종사의 노랫말인 듯하다. 원기37년(1952년)에 성가위원회가 제작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정산종사가 작사한 게 확실해 보인다. 교리도에 '일원은 법신불이니'라 하였듯이 법신불은 일원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므로 법신불찬송가는 일원상의 진리를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선포하고 찬송한 것이라 할 것이다.

소태산대종사는 원기4년 방언공사를 마치고 제자들에게 시구를 지어 읊게 하신 적이 있었다. 이때 정산종사는 일원이란 제목을 받고 '만유화위일 천지시대원(萬有和爲一 天地是大圓)' 즉 만유는 일(一)로써 되고 천지는 크게 둥근 것이라는 시구를 지어 올렸다. 그 뒤 원기17년(1932)에 원각가를 발표했고 원각가가 발표된 3년 후인 원기20년(1935년)에 대종사는 대각전을 신축하고 그곳에 일원상을 봉안해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과 수행의 표본으로 선포한다. 또한 대종사는 〈조선불교혁신론〉에서 '등상불 숭배에서 불성 일원상으로'라는 제목아래 신앙의 대상을 일원상으로 확정하며 아울러 수행의 표본까지 일원상으로 확정한 것이다.

정산종사는 이 같은 역사의 흐름을 증명하기 위해 원기22년(1937)에 '일원상에 대하여'라는 논설을 교단의 기관지인 〈회보〉 28호에 발표한다. 정산종사는 대종사의 대각을 새 회상의 종지로 삼고 일원상을 '일원상의 진리' '일원상을 신앙하는 방법' '일원상을 체 받는 법'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성가〉 4장 법신불찬송가는 일원상의 진리를 체성과 묘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법신불찬송이라는 주제를 경건하고 장엄하게 드러내고 있다. 단어와 개념이 연속해서 물리면서 등장하나 그 개념의 사이사이에서 생활과 연락되는 오묘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법신불은 바로 일원상 진리의 다른 표현이다. 법신불의 법은 도요, 이치요, 일원의 성리이다. 대종사는 〈대종경〉 교의품 3장에서 '일원상은 부처님의 심체(心體)로 이를 유가에서는 태극 혹은 무극, 선가에서는 자연 혹은 도, 불가에서는 청정 법신불이라 하나 원리에 있어서는 모두 같은 바 최후구경에 들어가서는 다 일원의 진리에 돌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이 일원의 진리에 근거하지 못하면 사도(邪道)라고까지 말씀했다.

법신불찬송가에서는 정산종사는 일원상을 둥그신 그 체성과 묘용으로 멋지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둥그신 님이 법신불 일원상으로 만유의 근원인 어머니이며 믿음도 이 법신불 일원상밖에 없고 이 법신불 일원상이 진리의 거울이라 천명하고 있다.

일원상인 법신불을 정산종사는 〈성가〉 4장에서 체성과 묘용의 층위로 구분하고 있다. 이 두 층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체성이면서 묘용이고 묘용이면서 체성인 것으로, 이 체성은 텅 비었으되 아무것도 없는 텅 빔이 아니고 일체의 조화가 구족한 만덕이 구족한 텅 빔이라는 것이다. 체성은 진공이면서 묘유가 구족해 있는 것이다. 텅 비었으되 씨알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묘용은 이런 텅 빈 묘유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작용은 작용의 씨앗인 묘유가 진공에 갊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정산종사법어〉 원리편 2장)

법신불찬송가의 가사처럼 절대계인 체성은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나 만덕이 구족한 자리이며 유무를 초월하나 여여히 변함없는 상주불멸로 독존하는 불생불멸의 자리인 것이다. 그리고 현상계로 전개되는 묘용은 절대계에 구족되어 있는 씨알이 자연의 조화로 전개되어 인과의 이치로 전개되어 공유로 은현하고 고금을 통리하며 음양이 상승되고 죄복을 보응한다는 것이다.

〈성가〉 4장 법신불찬송가의 반주는 마치 구름이 높이 있으면서 장중한 산꼭대기를 장엄하는 듯하다. 그리고 긴~ 음이 반복되면서 느리면서 묵직한 걸음 같은 경건함이 있다. 비유하자면 단전주를 할 때, 단전까지 긴 호흡을 들이쉴 때 숨이 약간 모자라는 듯 한 불안감속에서도 단전까지 묵직이 밀고 들어가는 충만한 느낌 같다. 단전주에 밀도있게 집주하므로써 얻게 되는 충만된 기쁨이랄까.

이런 진리를 향한 긴~ 정진이 긴~ 음의 반복과 절묘한 교접이 이루어지고 있다. 느리면서 흘러가는 음들은 차근차근 진리를 향해 걸어야 되는 묵직한 발걸음을 연상시킨다. 〈성가〉 4장 법신불찬송가는 진리를 향한 간절함과 도달되는 만족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긴장감과 뿌듯함이 교차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호부터 원불교 〈성가〉로 교리 공부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성가산책은 가사와 곡을 들은 후 감상을 기고한 것이고, 성가의 향기는 역사를 톺아본 것이다.
▲ 방길튼 교무


<나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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