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의성, 수행에 지극히 긴요한 법

禪要에 云 大要有三하니 一曰 大信根이요 二曰 大忿志요 三曰 大疑情이라 疑者는 以信爲體하나니 信有十分이면 疑有十分하야 悟得十分이라하니 此說은 則定靜之要法也라
何者오 無大願이면 至誠不生하고 無大疑면 死忿不生하고 無大信이면 眞疑不生하리라

(직역) 선요에 이르기를 크게 중요한 세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크게 믿는 뿌리요, 둘은 크게 분발하는 의지요, 셋은 크게 의문하는 뜻이다. '의'는 믿음으로써 체를 삼나니 믿음이 전부면 의도 전부이고, 의가 전부이면 깨달음도 전부이다. 이 말이 곧 정정의 요긴한 법이다.

삼학과 신분의성 관계

왜냐하면 큰 원이 없으면 지극한 정성이 나오지 않고, 큰 의문이 없으면 분발심이 생기지 않고, 큰 믿음이 없으면 참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소태산대종사는 〈정전〉 수행편 일상수행의 요법에서 자성의 정과 혜와 계를 세우고 신과 분과 의와 성으로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를 제거하라 하였다. '삼학은 일원상에 들어가는 열쇠이고 신분의성으로 삼학을 조성한다'하였다.

삼학이 아니면 동정 간에 공적영지의 광명인 일원상을 나타나게 하는 정정에 들어갈 수 없고, 자성 광명을 얻을 수 없다. 삼대력은 곧 동 정간 일원상의 광명이 매하지 않는 힘이다.

원불교와 불교의 선법

선요는 고봉선사의 편저이다. 고봉(高峯, 1238~1295)은 중국 송나라 말, 원나라 초기에 살았다. 고봉선사의 구도의 대표적인 화두는 '만법귀일 일귀하처'이다.

소태산대종사도 이 화두를 많이 연마하게 했고 정산종사 또한 '견성 오단계'를 밝히면서 만법귀일의 소식을 먼저 알라고 하였다. 이로써 보면 원불교 선법은 불교 선법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소태산대종사와 참고경전

이때는 유·불·도가 융합되면서 서로의 수행법을 교유하여 자가의 수행법을 발전시키는 때이다. 소태산대종사가 참고한 대표적인 선서와 수행서는 대부분 송말 원초의 것이다.

정사초의 〈태극제련내법의략〉과 고봉의 〈선요〉, 일본 도원선사의 〈만암법어〉, 몽산의 〈휴휴암좌선문〉, 고려 말의 보조국사와 혜근 나옹화상(惠勤懶翁和尙 1320~1376) 또한 이 시기의 인물이고 보면 이 시기의 선사상과 원불교의 선사상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 선 사상을 소태산대종사는 유가와 도가의 수행법을 융합하여 대승적 삼학병진선으로 창안하였다.

삼학병진선법 내력

이는 고려말 선사상이 이조 오백년의 신유학을 거치면서 변용된 유가의 정정수행과 상통하고, 이를 다시 정정수행의 '삼학병진선'법으로 변용시켰다고 본다. 〈영보국정정편〉에서는 고봉선사의 신분의성의 도 입문법을 밝히고 있다.

앞에 밝힌 바와 같이 소태산대종사는 '삼학병진선'법을 공·원·정의 견성·양성·솔성의 원리로 밝혔다. 이 원리와 실제로 동정 간에 공적영지의 광명을 보전하게 하였다(〈대종경〉 교의품 7장).

원불교 수행에서 신분의성의 마음 자세는 아주 중시되고 있다. 〈성가〉 67장에서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問何以立願하야사 此信忿疑誠之所出處乎아 曰一天地下에 至妙至寶至聖至尊之法이 唯一靈寶眞局也라 靈寶局은 人人各有稟賦於身內하야 而天素命之하시니 卽我之本性이라 率性修道하야 明德發揮하야 可以治國而平天下하며 可以爲億兆之君師하고 可以爲無量之壽仙하나니

(직역) 묻건데 무엇으로 원을 세워야 또한 신분의성이 나오겠나이까. 말하기를 한 천지에 지극히 묘하고 지극히 보배롭고 지극히 성스럽고 지극히 존엄한 법이 오직 하나의 영보진국이라. 영보국은 사람사람이 각각 몸 안에 품부하고 있어서 하늘이 본래 명한 것으로 곧 나의 본래 성품이다. 성품을 따라 도를 닦아서 덕을 밝혀 발휘하면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화롭게 할 수 있으며, 억조의 임군과 스승이 될 수 있고, 무량의 수를 가진 신선도 될 수 있다.

하늘이 본래 명한 것

한 천지에 지극히 묘하고 보배롭고 성스럽고 존엄한 영보국을 찾으라고 한다.영보국은 하늘이 본래 명한 것이라 한다. 하늘이 명한 영보국은 사람마다 본래 갖추고 있다고 한다.

하늘이 본래 명한 것을 성품이라고도 한다(〈中庸〉: 天命之謂性).

성품을 꾸어서라도 보아야

이 성품을 찾아 얻으려면 '신·분·의·성으로 삼학을 하여야 된다'고 소태산 대종사는 가르치고 있다. 소태산대종사는 영보진국인 성품을 꾸어서라도 보라고 하였다.

도를 공부하려는 사람이 신령한 기운인 이 성품(寂寂惺惺 空寂靈知의 光明)을 보지 못하고 연마하지 않으면 도를 이룰 수 없다.

더욱이 도를 자기 몸 조화하는 데서 찾아야지 밖으로 화려한 장식과 번화한 글에서 찾으려고 하면 얻을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자기의 성품을 보아 단련할 수 있어야 참다운 지도자와 스승과 신선(성인 부처와 같은 의미)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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