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50년, 침체 속 의미 있는 시도와 노력

교단의 미래를 생각할 때 청년교화는 중요한 교화 키워드다. 청년회를 거쳐간 많은 인재들이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며 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서원을 키워 전무출신의 길에 들어선 사람도 많다. 원기100년, 원불교청년회 창립50주년을 맞이해 반백년의 청년교화현황과 발전방향을 살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1주는 원청 50년의 교화 역사, 2주는 청년을 위한 교화정책, 3주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담당교무 및 재가 출가교도의 의견을 들어본다. (편집자)

▲ 화곡교당은 학생-청년 합동훈련을 3년째 진행해 자연스러운 진급·교화활력을 얻고 있다.

교당 청년회와
대학생 교우회의 갈등

원남의 도전
서대연 졸업생 되살리기

학생·청년 합동훈련으로
자연스레 진급


원불교청년회는 각 교구 청년회의 집합체이며, 교구 청년회는 각 교당 청년회의 합이다. 원불교청년회의 흥망은 교당 청년회 교화에 바탕하므로, 청년교화의 침체는 곧 원불교청년회의 정체와 맞물려있다.

세상이, 청년들이 변해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지겨울 정도다. 해답은 없을까. 다양한 세대와 포지션의 재가 출가교도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렇다 할 해답은 없었으나, 원불교청년회 50년 역사 속에서 의미 있는 시도와 성공, 향후 개선책 등에 대한 실마리는 얻을 수 있었다.

대학생과 청년의 분리로 교당청년회 위축

보통 원불교청년회의 황금기를 원기60년대 전후로 본다. 당시 종로교당 청년회 소속이던 개봉교당 김성철 교도는 원기90년부터 원불교청년회 22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당시 서울교구 청년 체육대회는 국민대 운동장을 빌려했다. 종로 청년회만 해도 100명, 다른 교당들도 수십 명씩이었다"며 열기를 회고했다. 물론 시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가 적어 청년들이 종교에 몰렸던 것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은 대학생, 청년이 나뉜 분위기지만, 당시에는 하나로 어우러졌던 것이 큰 차이다"고 밝혔다.

대학생과 청년의 분리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원불교대학생연합회(원대연)가 탄생한 것은 원기63년으로 서울교구대학생연합회(서대연) 등 교구 대학생연합회가 속속 생겨났다. 한국사회의 격동기를 겪으며 특정한 대학 문화가 생겼고, 대학생들만의 교화집단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창설된 것이다. 학내 동아리방에서 법회를 보고 이웃 학교 교우회와 함께 행사를 치르는 대학생연합회에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이 대거 교당에서 학교로 이동했다. 특히 타지역으로 진학한 학생들 대부분이 교우회에 소속됐고, 교우회를 하는 동시에 교당에 나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 때문에 새로운 갈등도 생겨났다. 청소년국 하태은 교무는 "교당에서는 서대연이나 원대연에 불만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교당 입장에서는 우리 학생 출신이 대학에 갔는데 교우회 활동에 치중하다 보니 교당에 소홀해지는 거다"고 말했다.

사실 교우회 담당 교무에게도 대학생들을 교당으로 데려가는 것은 어렵다. 신입교도인 경우 교당 법회가 딱딱하거나 지루할 수 있어 가뜩이나 위축된 교무들로선 더없이 조심스럽다. 원대연 지도자대회에서 한 교무는 "어차피 졸업하면 다 사라지는데 이렇게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런 간극이 있다 보니 원불교청년회의 중요한 인프라인 대학생들이 휴학이나 졸업을 기점으로 원불교와 멀어지는 현상도 뚜렷하다. 유기적인 연계교화의 맥이 끊기는 것이다. 특히 대학생들이 많은 서울의 사례는 극명하다. 원기80년대 교우회 활동을 했던 청년들 중 현재까지 교당에 나오는 비율은 절반도 되지 못한다. 당시 서대연은 월1회 횃불법회에 나오는 인원만 30~40명에 달했으나 졸업 후 대부분이 떠났다. 청소년국 최규선 국장 역시 "동아리와 교당 간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 졸업생들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이 문제가 청년교화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고 지적한 바 있다.

청년에겐 고유공간·지원 있어야

이같은 누수 현상은 원대연과 서대연이 창설된 후 30여 년 동안 계속 목도되었던 것이다. 이에 원기87년 원남교당에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윤대원 교무와 최희공 원무, 서대연과 서울교구 청년회장을 역임했던 황민수 교도가 힘을 합쳐 서울대(서원회)와 이화여대(이원회)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교화를 펼친 것이다. 다시 돌아온 청년들은 마음공부로 무장됐고, 더러는 새삶회나 시민선방에서 활동하되 교당 청년회에 무게를 확실히 뒀다. 재가 출가교도와 청년이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낸 원남 청년회는 청년교화에 큰 가능성을 시사했다.

원남교당은 앞서 지하 공간을 서대연 사무실과 학생들의 학숙으로 사용하도록 내 준 바 있다. 원기70년대 말, 우세관 교무와 김제원 교무가 서울교구와 원남교당에 부임하며 마련된 사무실에서 성원회, 우원회, 중원회 등이 창립됐고, 횃불법회, 여름농활, 가을추활, 겨울 사리연구 모임 등을 활성화시켰다. 당시 서원회와 서대연 회장을 맡았던 서울교당 최성의 교도는 "대학로에 가까운데다가 우리만의 공간이 있으니 늘 학생들로 붐볐다. 당시 서울교구장이던 경산종법사도 대학생 교화에 특히 관심과 지원을 많이 해줘 어떤 활동도 어려움 없이 펼쳐나갔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이때의 서대연은 4대 종단 청년들이나 입정교성회, 서울대 동아리연합회와 교류하며 함께 농활을 가는 등 대외적인 힘도 있었다.

군교화, 전역 후 교당 연계 시도

이렇게 원불교청년회의 위기 요인 중 하나는 구성원들이 연계되지 못함에 있다. 크게 학생에서 청년을 거쳐 일반으로 진급하는 사이사이 이주나 유학 등을 겪을 때 가장 많은 교도들이 떠난다. 이 점에 착안한 화곡교당은 겨울훈련을 학생-청년 합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생과 청년을 함께 맡고 있어서 막연히 함께하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던 박화영 교무는 첫 훈련 후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학생들이 청년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진급하게 된 것이다. 이후 연계교화에 뜻을 둔 화곡교당은 담당이 따로 된 이후에도 계속 학생-청년 합동훈련으로 진행하고 있다. 박 교무는 "여름훈련 역시 어린이와 학생을 함께 묶어 어린이들이 학생회로 자연스레 연결되도록 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교당이 훈련을 10명 이하로 나는데, 합하면 어느 정도 규모도 되고 친구도 데려오기 좋아 교화 효과도 좋다. 또 청년 선배들에게 배운 점을 다른 훈련에서 활용하도록 하는 지도자양성에서도 소득이 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시도는 군대에도 있다. 군교화 9년, 이제는 전역 후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작년 군종장교 3호 강동현 교무의 임관과 최근 사관학교들의 잇단 교당 건립으로 군교화는 상승 분위기를 타고 있다. 이에 군대 전역 후 교당에 연결시키거나 따로 군종병 모임을 만드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조경원 교무는 화천에서 함께 지냈던 군종병들과 함께 만든 '전역 군종병 모임'을 만들어 또 한번의 교화에 매진 중이다. 조 교무는 "일부에서는 그 많은 장병들이 일선 교당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비판삼지만, 교화자로서 그 가운데 단 1%라도 교당으로 찾아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교화한다"고 밝혔다.

어려운 가운데도 희망은 있다. 재가 출가교도들은 ▷청년들은 비슷한 또래인 부교무보다 주임교무가 법회를 봐줄 것 ▷주임교무부터가 청년담당 교무들에게 시간적·물질적 여유를 줄 것 ▷잠자는 청년을 깨울 수 있는 것은 청년이 아닌 교무 ▷ 단 1명이라도 청년교화만 연구하는 팀을 꾸려 매뉴얼로 기록할 것 등을 바람으로 덧붙였다.

올해 맞이한 원불교청년회 창립50주년은 교당이 겪고 있는 청년교화의 부진을 딛고 일어설 기회이자 절벽 끝까지 밀린 위기다. '원불교100년 원청50주년'. 기회냐 위기냐는 우리의 관심과 지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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