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기금 희사, 류홍일 교도
10년간 기도성금, 강운관 교도

▲ 원불교100년기념관(가칭)건축에 1억을 희사한 류홍일 교도.
▲ 10년의 기도비를 성금으로 기탁한 강운관 교도.

가락교당 두 교도가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에 전달한 성금의 사연이 감동으로 전해지고 있다.

류홍일·강운관 교도는 각각 1억과 1천6백4만2천원의 성금을 8일 100년성업법회를 통해 전달했다. 이 성금은 각각 원불교100년기념관(가칭) 건축기금과 100년성업성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건축기금에 1억원을 희사한 류홍일 교도는 10년전 열반한 모친 손도심 정사의 뜻을 받들어 거액을 쾌척했다. 원광대학교 류성태 교무의 형인 그는 어머니가 대종사 이야기를 하며 "여유가 있으면 교당 하나 세우는 게 큰 복이라고 하셨다"고 한 말을 늘 마음에 새겼다. 그는 "그냥 한 말씀이실 수도 있지만, 언젠가부터 내게는 그 말이 숙제가 되고 서원이 됐다"고 회고하며 "원기100년 성업봉찬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건 어머니가 주신, 대종사께서 내리신 기회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내 허순월 교도와 "이생 이만큼 잘 살아왔으니 이제는 내세의 통장을 만들자"고 상의하며 성금을 마련했다. 현직에서 은퇴한지 20년, 큰 금액이 부담되진 않았을까. 그는 "부담이 크고 작고 간에 마음먹은 일이니 했을 뿐이다"는 굳은 심지를 내보였다. 부부는 성금을 마련한 뒤인 1월16일 "시간 좀 내달라"며 이장훈 교무에게 청해 그 자리에서 전달했다.

류홍일 교도는 원기26년 여섯 살의 나이로 정읍교당에 입교, 올해로 입교 75년째를 맞이했다. '위명부 번호 2316번'까지 외우고 다니는 그는 유일학림 1기생으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유일학림이 그리워지고, 그리울수록 신심이 더욱 두터워졌다"며 그 시절을 행복하게 반추한다. 팔순을 맞은 해라 더욱 뜻깊다는 류홍일 교도 그는 "팔순의 나이로 돌아보니 일 때문에 일요일에 종종 법회에 빠졌던 것이 못내 마음에 남는다"고 고백하는 맑은 신앙인이다.

한편 1천6백4만2천원이라는 강운관 교도의 성금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꼬박 10년동안 매일 100년성업기도를 하며 올린 기도비로, 첫해에는 매일 1천원, 두번째해에는 2천원이라는 식으로 지난해 1만원까지 올렸던 금액의 합인 것이다.

참신하고도 기발한 기도비 릴레이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원기89년12월, 그의 부장 승진을 축하하며 정성만 교무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에 올랐고, 100년도 10년 앞이니 이 참에 뭔가 해보라"고 했던 말이 계기가 됐다. 그는 늘 하던 기도로 100년을 준비하되 흔적을 남겨보기로 했다. 해마다 1천원씩 올린다는 계획 역시 처음부터 결심했다.

"문제는 지갑에 잔돈이 없을 때가 많았던 거였다." 그는 이내 주기적으로 돈을 바꿔 보관해놓고 매일 올렸다. 그러나 때때로 잊을 때도 있었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지폐도 신권으로 바뀌었다. 외국 출장길 한화를 챙기지 못해 달러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의 성금함에는 지금은 찾기도 힘든 구권도 있고 싹싹 긁어모은 동전도 있으며, 당시 환율에 꼭 맞춰 낸 달러도 있다.

4년간 중국 주재원을 하면서는 한국에 오갈 때마다 한화를 마련해왔다. "한국지폐가 가득 든 가방 때문에 두 번이나 세관에 걸려 해명을 해야했다"는 일화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날들도 있었지만 자신과의 약속에는 투명했다. 10년동안 30여번이 빠졌는데, 기도비도 꼭 그만큼 빈다. "돈을 오래 보관하면 곰팡이도 피더라"고 할 정도로 올린 뒤에는 손도 대지 않았던 그는 지난해 12월12일 해제를 하고 난 다음날 교당에 가방째 희사했다.

기도를 마친 소감은 무얼까. 그는 "만감이 교차했다"면서도 "나 자신에게 우선 고맙고, 가족들에게 10년간 한 뜻으로 지내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는 기쁨이 컸다"고 말했다. "미래의 며느리와 사위에게 이야기해줄 거리가 생겼다"는 소감도 덧붙인다.

그에게 기도는 무얼까. 2000년대 들어 위기가 잦았던 STX에서 전무가 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들을 그는 기도의 힘으로 넘겨왔다고 고백한다. "기도 후 하루 일과를 생각하는데, 기도 기운에 법대로 할 힘이 생겼다"는 그는 "화가 나더라도 그동안 쌓인 기도비를 보면 마음이 편해지고 뭔가 이뤄내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며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 밝혔다.

원기48년 서성로교당 입교, 서울로 오자마자 서울교당 학생회장을 맡을 정도로 일념청정한 신앙인으로 살아온 일생. 10년 기도를 마친 강운관 교도는 곧바로 다음 기도를 결제해 역시 매일매일 이어가고 있다. "이번 기도비는 어디에 쓸지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 꼭 필요한 곳에 보은할 기회가 올 것이다"며 기다리는 그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