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극한 정성을'

국어 연구에 독보적인 인물로 평가
40여개 방언, 5000여개 문장 수집 분석
말소리의 높낮이 측정하는 척도 마련

1995년 세종문화상 학술부문 대통령상, 2010년 외솔상 문화부문, 2011년 주시경 학술상 수상. 충남대학교 김차균 명예교수(법명 수진·남대전교당)의 수상경력이 대변하듯, 그는 언어학, 음운론, 방언학, 국어음운사 등 우리말과 글의 연구 분야에서 독보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한글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에게 한글 사용에 대한 생각을 묻자 〈대종경〉 전망품 3장을 소개하며 "대종사께서 이미 말씀하셨다"고 서두를 꺼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문화대국으로 알려진 것은 최근 20여 년 전부터입니다. 우리말과 한글로 대중의 교육을 시켜온 지 반세기만이지요. 세계에 세종학당은 2,000여 개가 있고, 우리말과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머지않아 100여 만 명에 이를 것입니다."

그는 왜 그 많은 세계인들이 우리말과 글을 배우려 하겠느냐고 기자의 생각을 물었다. '어느 나라가 자기 나라 말의 표기를 2가지 문자(한글, 한자)로 병기하는 곳이 있는지', '기독교 성경을 로마자와 콥트 문자로 병기'하거나, '영어 교과서를 영어 단어와 더불어 어원을 밝히기 위해 라틴 문자나 희랍 문자를 병기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김 교수는 차분하게 되물었다. 한글사용에 대한 일방적 주장이 아닌 이치와 명분이 실린 차분한 어조가 설득력을 더했다.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소리글자에 가까운 간자체를 사용하는 이유, 우리말의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현황, 국한병용이 아닌 순수 우리말 사용 방안에 대한 이야기가 긴 시간 이어졌다. 그가 전하는 한글의 가치는 분명했고, 한글 사용에 대한 이유 또한 명확했다.

김 교수는 국어 성조 연구분야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본격적인 연구는 1969년 첫 일자리인 목포동광중·고등학교(홍일고등학교의 전신) 강사로 부임하면서부터였습니다. 완행열차가 용산역에서 호남선의 종점인 목포역에까지, 연착이 심해 보통 9시간에서 11시간이 걸렸습니다. 정거장마다 그 지방 특유의 억양을 가진 방언 토박이들이 내리고 타면서 자신들의 방언을 소박하게 그대로 들려주었죠."

한반도의 중앙인 서울에서 서남단인 목포까지 가는 완행열차 안은, 성조가 연속적인 차이의 사슬을 이루는 묘한 현상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서부전남 방언의 운율 체계를 깨칠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이다.

"이후 전라남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대구 및 경상북도 내륙 지방 방언, 강원 동해안 지방의 방언들과 함경북도의 육진 방언, 연변의 연길 방언 등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모든 시간과 체력과 비용을 들여 40여개 방언, 낱말 성조 자료 100만여 개, 문장 성조 자료 5000여 개를 발로 뛰어서 직접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중세 국어의 방점 자료를 30년 이상 관찰하면서 현대의 함경도 및 영남의 방언들의 방점 표상과 비교했다. 특히 최근 5년 동안에는 중고한음(中古漢音, 수당시대의 한자음)과 15~16세기 우리 문헌들에 나타나는 한자어들의 방점과 대조하고, 중고한음과 현대 창원 방언 한자어 방점 자료를 대조해, 한 언어의 역사적인 단계들 사이와 또 같은 시대의 방언들 사이의 방점의 대응 관계가 정연하게 나타남을 증명하기도 했다.

성조론 분야에서 학문적인 연구 결과는 유능한 스승이 한두 명의 제자에게 자신의 성조론을 비법으로 전수해 주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자신이 한 것은 옳고, 남이 한 것은 틀렸다는 주장만 분분할 뿐, 진정으로 누가 올바르게 학문적인 성과를 이루었는지 평가할 방법이 없었다.

"학문적인 깨달음은 글이나 말로써 증명해야 합니다. 성조를 연구하는 사람은 자신이 수집하고 분석한 자료가 정확하고, 자신의 학문적인 방법론이 보편타당한 것임을 증명해야 하지요." 김 교수는 말소리의 높낮이를 측정하는 객관적인 척도(scale, 자)를 마련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리고 실험음성학, 컴퓨터학을 전공하는 젊은 학자들에게 그의 척도를 컴퓨터 프로그램화 하도록 했다. 이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음향분석기를 카이포네티카(kphonetica)라는 이름으로 무료로 개방해 관리하고 있다. 그의 노력으로 성조론이 비법전수(mystagogy)의 단계에서 벗어나서 정상적 과학의 단계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에게 국어 성조의 연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학문의 목적은 진리탐구에 있습니다. 음운학은 인간의 모든 학문들 가운데서 가장 성리 탐구에 가까운 학문입니다. 우주 자연과 인간의 심성이 순수하게 결합되어 표면으로 나오는 것이 말소리지요. 이는 선악에 물들지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양단을 초월해 있어서,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진리(일원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애써 도를 깨치려고 하지 말고, 평상심으로 돌아가서 나의 일상 속에 하고자 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정의를 세우고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극한 정성을 다하라.' 한평생 국어연구에 지극 정성을 다한 그가 담아두고 있는 '내 마음의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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