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공부도량(工夫道場)' 사람들은 우리 교단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성실한 생활 속 공부를 통해 스스로를 깨우쳐 나가는 원불교인들, 그리고 이소성대와 무아봉공의 상 없는 우리 교단의 사회활동 모습에 그들은 많은 호감을 갖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간 성의정심(誠意正心), 자리이타와 공익봉공에 앞장서 온 우리 교단에 대한 신뢰와 기대의 표출일 것이다.

'참 좋은 공부도량.' 그렇다! 아마도 우리 교단만큼 '공부'를 강조하는 종교도 드물 것이다.

원불교는 생활 속 꾸준한 공부와 수행정진을 중요시한다. 한마디로 일상을 공부와 수행의 학습교실로 삼아 인생의 정도(正道)를 깨닫고 성불제중의 일원대도를 실천해 나가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항상 시대에 걸 맞는 새로운 학문과 기술을 연마하여 세상에 유용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공부(工夫)!' 공부는 죽을 때까지 그 끝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교문에 들어와 특히 마음공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을 공부한다'라는 그 말 자체가 얼마나 생소하고 어색하게 들리던지, 꼭 무슨 낯선 번역어를 듣는 것 같았다.

그만큼 자신공부를 등지고 지내왔다는 반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 공부라는 어휘에 보다 큰 매력을 느끼고 친근감을 갖게 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었다.

무심코, 마음공부, 공부심, 삼학공부 등의 어구(語句)를 써보다가 정말 우연히 참으로 심오하기 그지없는 공부의 함의(含意)를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 공부의 한자를 파자(破字)해 보면서다.

먼저 '工'자를 보면, 위의 'ㅡ' 과 아래의 'ㅡ' 은 각각 하늘과 땅을,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I'는 바로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夫'자도 하늘과 땅의 기운을 가슴으로 안고 우뚝 서 있는 (二+人=夫) 장부(丈夫)의 모습을 하고 있는바, 나는 이 '工夫'라는 글자 자체가 곧 하늘(天理)과 땅(地理)을 잇는 인간의 본래 면목과 책무를 은유하고 있다고 나름의 해석을 해 보았다.

따라서 천지자연의 뜻을 받들어 성불제중의 큰 포부를 이루겠다는 우리 '공부인'들의 자세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를 그 글자 자체가 이미 그 본의와 명제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적시해 주고 있다고 본 것이다. 실로 득의(得意)의 대 발견이었던 것이다.

어느새 3월이다. 새로운 다짐으로 시작한 을미년도 석 달째를 맞는다.

원기100년을 맞아 '지난 일을 거울삼아 오늘을 새롭게, 내일을 희망차게'해 나가자고 역설하신 경산종법사의 신년법문을 떠올린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이 '공부'의 깊은 어의(語義)와 명제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시대는 변한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도 자신에 대한 성찰과 '공부'자세를 달리해야 하지 않겠는가를 생각해 본다.

무릇, 제자리에 머무는 자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보다 새로운 교단적 각성과 결단이 필요한 때라고들 한다. 혹자는 지금이야말로 교단의 창립정신을 되살려서 환골탈태의 변화와 혁신을 이루어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만큼 오늘의 현상과 과제들이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지금 교단은 새로운 원불교100년을 맞아 시대에 걸맞는 교헌개정을 비롯하여 교정원 서울이전, 원불교100년기념관(가칭) 건축, 원불교TV(wbs)개국 등 미래지향적인 목표사업들을 추진 중에 있다.

어느 것 하나 그렇게 손쉬운 일들이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보다 깊은 성찰과 거시적인 안목, 과감한 결단과 실천이 필요한 때다.

이제 교단은 모든 구성원들이 보다 적극적인 신뢰와 희망을 가지고 다가설 수 있도록 더욱 진취적이고 활기찬 교단의 변화와 혁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하늘과 땅에게 부끄러움이 없는, 진실로 '참 좋은 주세교단' 참다운 공부와 실천으로 거듭나야 한다.

오늘을 새롭게, 내일을 희망차게 말이다.

바야흐로 찬란한 새봄, 희망의 새 시대를 향한 새로운 100년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으로….

<분당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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