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에 들다

원문) 千萬師說이 更不妙於此說하며 妙道玄理가 且無加於此道라 目無所好見하고 耳無所善聞하며 妙無他妙하고 寶無他寶면 卽一心靜에 蕩蕩然豁豁然 無絲毫纖塵之礙滯면 則若人初生無異하야 飮茶에 不知茶하고 喫飯에 不知飯하며 行不知行하고 坐不知坐하야 情識頓淨하고 計較都忘하야 恰似 有氣底死人이요 且泥塑人相似라 是名立定이니 其若氣發神動이면 則初如圉圉而不得編序나 然至於心華頓發이면 卽洞然十方하야 如杲日麗天하며 明鏡當臺라 不越一念에 頓成正覺하리니 是名得慧라 如此者는 乃禪家之佛이요 靈寶之聖이며 仙家之丹이니라

(직역) 천만 스승의 말씀도 다시 이 말보다 묘함이 없고, 현묘한 도와 이치도 또한 이 도보다 더함이 없다. 눈으로 좋게 보이는 것이 없고, 귀로 기쁘게 들리는 것이 없으며, 묘함이 이보다 더 묘함이 없고, 보물도 이 보물 밖에 없으며, 한 마음이 정하고 고요하여 넓고 넓게 트이고 트여서 실오라기와 가는 티끌도 걸리고 엉기는 것이 없으니, 이는 마치 사람이 처음 날 때 성인과 다름이 없으나, 차를 마셔도 차 맛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밥 맛을 알지 못하며, 행해도 행하는 줄을 알지 못하고, 앉아도 앉은 줄을 알지 못한 것과 같아서 정식이 문득 맑고 계교를 모두 잊어버려 기운은 있으나 죽은 사람과 같고, 또한 진흙으로 만든 허수아비와 같나니, 이를 입정이라 한다.

이에 기가 발하고 신이 동하면 처음에는 어릿하여 순서를 얻지 못하나 마음에 빛이 문득 발하면 곧 시방(十方)에 통해서 개인 하늘에 밝은 태양 같고 명경을 앞에 마주함과 같아서 한 생각을 넘지 아니하고 문득 정각을 이루니 이를 일러 혜를 얻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람이 바로 선가의 불이요, 영보의 성이며, 선가의 단이다. 중국 한나라 이전에는 단(丹)을 도(道)라 했다.

정정(定靜)의 도에 들어 도를 얻는 과정은 소태산대종사의 대각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한 생각을 얻기 전에는 혹 기도도 올렸고, 혹은 문득 솟아 오르는 주문도 외웠으며, 혹은 나도 모르는 가운데 적묵(寂默)에 잠기기도 하였는데, 우연히 한 생각을 얻어 지각(知覺)이 트이고 영문(靈門)이 열리게 된 후로는, 하루에도 밤과 낮으로, 한 달에도 선후 보름으로 밝았다 어두웠다 하는 변동이 생겼고, 이 변동에서 혜문(慧門)이 열릴 때에는 천하에 모를 일과 못할 일이 없이 자신이 있다가도 도로 닫히고 보면 내 몸 하나도 어찌할 방략이 없어서, 나의 앞 길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걱정이 새로 나며 무엇에 홀린 것 같은 의심도 나더니, 마침내 그 변동이 없어지고 지각이 한결 같이 계속되었노라."(〈대종경〉 수행품 46장)

깨어나는 과정은 어두운 마음에서 벗어나 맑고 밝은 세상이 나타나는 과정이다. 청풍월상시 만상자연명(淸風月上時 萬像自然明: 맑은 바람 불고 달 떠오르면 만상이 자연히 밝다)의 과정과 같다. 정정에 들었다가 나오는 과정을 날이 밝아오는 것과 같다고 본 것이다. 처음에는 흐릿하지만 나중에는 구름 거친 하늘에 밝은 태양이 나타난 것과 같다고 한다. 몽산의 '휴휴암좌선문'에서 대오이즉(大悟以則:크게 깨닫는 것으로 법을 삼음)의 법과 같다.

이 경지는 선가(禪家: 선불교)의 부처이며. 영보를 수행한 성인(영보 수행은 유가의 정정 수행을 가리킴)이며, 선가(仙家는 도가를 가리킴)의 단이라 한다.

유·불·도가 추구하는 도의 경지가 서로 같음을 의미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유·불·도의 가르침이 같음을 밝히고 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과거에 모든 교주(敎主)가 때를 따라 나오시어 인생의 행할 바를 가르쳐 왔으나 그 교화의 주체는 시대와 지역을 따라 서로 달랐나니, 비유하여 말하자면 같은 의학 가운데도 각기 전문 분야가 있는 것과 같나니라. 그러므로 불가(佛家)에서는 우주 만유의 형상 없는 것을 주체 삼아서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를 가르쳐 전미개오(轉迷開悟)의 길을 주로 밝히셨고, 유가(儒家)에서는 우주 만유의 형상 있는 것을 주체삼아서 삼강·오륜과 인·의·예·지를 가르쳐 수·제·치·평(修齊治平)의 길을 주로 밝히셨으며, 선가(仙家)에서는 우주 자연의 도를 주체삼아서 양성(養性)하는 방법을 가르쳐 청정무위(淸靜無爲)의 길을 주로 밝히셨나니, 이 세 가지 길이 그 주체는 비록 다를지라도 세상을 바르게 하고 생령을 이롭게 하는 것은 다 같은 것이니라. 그러나, 과거에는 유·불·선(儒佛仙) 삼교(三敎)가 각각 그 분야만의 교화를 주로 하여 왔지마는, 앞으로는 그 일부만 가지고는 널리 세상을 구원하지 못할 것이므로 우리는 이 모든 교리를 통합하여 수양·연구·취사의 일원화(一圓化)와 또는 영육쌍전(靈肉雙全)·이사 병행(理事竝行) 등 방법으로 모든 과정을 정하였나니, 누구든지 이대로 잘 공부한다면 다만 삼교의 종지를 일관할 뿐 아니라 세계 모든 종교의 교리며 천하의 모든 법이 다 한 마음에 돌아와서 능히 사통 오달의 큰 도를 얻게 되리라."(〈대종경〉교의품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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