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시대를 관통하는 소망
개벽의 상태는 현재진행형

가슴 벅차게 다가온 원불교 창립 100년은 적공과 정진의 기회가 되고 있다. 길을 가는데 우연히 지하철에서 눈에 들어온 박수진의 시가 나의 마음공부를 대변한 듯하여 가슴을 저렸다.

봄날 / 무작정 봄을 기다리지 마라 / 봄이 오지 않는다고 징징대지마라/ 바람부는 날이 봄날이다 / 웃는 날이 봄날이다 / 꽃이 피지 않아도 / 꽃이 지고 없어도 / 웃는 날이 봄날이다 / 아픈 날도 봄날이다 / 지나보면 안다 / 오늘이 그날이다.

지난 3월13일 영산성지 대각터에서는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사업으로 대각터 참배공원 착공봉고식이 열렸다. 원기101년 4월이 되면 새롭게 조성된 대각터에서 새 봄을 만날 수 있다. 대각탑과 만고일월비는 단장될 것이며, 복원된 샘터에서는 깨침과 같은 생수를 맛볼 수 있고 둘레 길은 또 하나의 쉼터로 자리 잡을 것이다.

소태산대종사의 깨달음이 시작된 노루목에서 긴 호흡을 내쉬어 본다. 새 종교의 탄생은 어마어마한 사건이고 역사이다. 종교란 시대를 관통하는 새로운 사상과 소망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로 묵상을 하다가 그 역사의 소식과 소명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의 세계를 깨닫고 은혜의 세상을 이루고 삼학공부로 정진하며 살 수 있는 우리 삶의 뿌리가 대종사의 공덕이고 자비이며 대각의 기쁨일 것이다.

소태산대종사 대각의 특징은 첫째, 개벽의 주체가 나이며 우리라는 것이다. 대종사는 자신, 몇 명의 제자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누구나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돼야 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소태산의 개벽은 스스로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나의 주체성은 나의 존엄함을 침해하는 것들에 저항하고 나의 조물주는 나임을 확실히 할 때 강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자기 자성의 힘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대산종사께서도 그 정신을 이어 받아 "새 천지개벽의 역사를 대종사나 정산종사나 선성에게 미루지 말고 우리 각자가 그 주인공이 될 것"이라며 기원했다.

〈정전〉 수행편 제17장 법위등급이 그 구체적인 공부길이다. 법위등급대로만 공부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이 사실은 나를 춤추게 하고 우리를 신나게 한다.

둘째, 개벽의 상태는 진행형이다. 세상과 물질은 쉼 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오늘날 인류는 인간의 욕망에 과학의 날개를 달아 앞도 보지 못하고 돌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신을 끊임없이 개벽해야 한다. 물질의 질주, 인간의 욕망과 정면으로 마주하며 정신세력을 확장해야 할 때이다.

삶은 마침표가 아니고 쉼표이며, 물음표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모두가 희망이고 기쁨이다. 지금의 어려운 현실은 지나감속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순경에 사로잡히면 언제든 뒤떨어질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진행행으로서의 개벽은 불퇴전공부가 답이고, 물음이 깨침의 원동력이고 자연이 그렇듯이 상 없는 정진이 삶의 거듭남이다.

셋째, 개벽의 시점이 일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념 속에 갇히거나 이상 속에 떠돌아다니지 않고, 지금 여기서 개벽의 씨를 키워야 한다. 지금 뛰고 있는 나의 맥박과 호흡 그리고 시비이해로 만나는 사람과 생로병사로 진행되는 모든 사실 속에 참여하는 그 일상이 개벽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수행의 요법이다.

산천초목에 봄이 왔다. 창립 교단 100번 째 봄도 이렇게 왔다. 나는 생각한다. 대종사의 대각자비로 맞이한 새로운 봄날에 나의 개벽시계는 잘 작동되고 있는가? 올해를 결의하는 나에게 소태산은 정신을 개벽하자고 격려한다. 용기를 준다.

"너의 마음에 천의를 감동시킬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청년 소태산의 음성이 이제 나에게 왔다. 열정으로서의 개벽과 더불어 침묵으로서의 개벽도 맞이하고 싶다. 일원상은 걸림 없이 길을 열어준다. 일원상은 사심없이 사방을 비춰준다. 일원상은 가만히 귀 기울인 만큼 들려준다. 언제나 둥근세상으로 그렇게 있다. 개벽도 그렇다.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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