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수녀

〈유엔미래보고서 2045〉는 첨단기술이 머지않아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물리적인 것들과 직업 그리고 문화라는 무형의 가치들이 사라지게 되며, 마침내 한 개인의 삶과 사회 체제와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꾸게 될 것을 예견한다. 그 변화의 모형으로 미래학자 토마스 베리는 생태문명 시대를 제시한 바 있다. 이 시기는 독점과 지배, 착취를 기반으로 발전한 산업사회가 쇠퇴하고, 인류의 문화가 우주적 그물망 형태의 생명 네크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상생의 관계양식으로 진보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에 상응하여 인류공동체 삶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4개의 체제(정치, 기업, 대학, 종교)도 변화하고 있다. 정치는 한 강대국의 지배로부터 다자지배구조로 발전 중이며, 기업은 기술의 독점보다는 자기개방과 협력을 통한 이익공유와 기술 개발을 추구하고, 대학은 집단-반복 교육 복종관계의 전통적인 지식전달 방법이 창의성과 동료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을 지향한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종교는 어떻게 변모되어야 할 것인가?

토마스 베리는 과거에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체계가 대립하였듯이, 생태문명시대는 두 개의 이념(기술주의와 생태주의)의 대립을 예상한다. 그리고 그 해결을 종교와 과학, 즉 영성과 물질의 상생에서 보았다. 첨단 기계 기술문명은 인간에게 온갖 편리함과 안락함, 생명의 연장을 제공하였으며, 인간을 미신적이고 주술적인 사고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이 세속화한 세상 안에서, 사람들은 성스러움에 대한 향수를 느끼고 성스러움으로 회귀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는 인간 자신의 능력과 창조적인 노력에 의해 발생한 일련의 새로운 상황 앞에 무력감, 즉 자신의 내면 분열과 정체성 상실, 외부적으로 환경파괴와 오염 그리고 핵 문제, 실업문제로 인하여 예상되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종교의 진정한 역할이 있다. 종교는 이 시대 사람들의 절망과 불안을 희망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종교는 상생의 생명공동체 윤리를 새롭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갑과 을로 분리된 객차로 나뉜 물질이라는 욕망의 기차에 몸을 싣고 계속하여 달려가고 있다. 그나마 이것도 없는 이들은 절망이다. 이 분노와 절망감은 어디서 유래하는가? 내 안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자연스럽게 흐르며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편 가르기에 기초한 조직문화는 자연스럽게 흐르는 생명의 물줄기를 가로막고, 이 안에서 벌어지는 무한경쟁, 부정부패, 부의 편중의 극대화, 실업, 양성평등, 핵문제는 생명의 역동적인 힘을 흩어버리고, 소진시키고, 마침내 생명공동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은 바로 이러한 현실의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종교인들은 이 사회의 생명 소통을 방해하는 요소를 직시하고, 그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추상적인 거대 담론을 펴기 보다는,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혁명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선하고, 의로운 목적을 위해서도 생명을 해치는데 가담하지 않고, 오히려 위기에 처한 생명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 이로써 고대로부터 춤과 가무를 즐기던 신명이 넘치는 생명의 열정을 되찾도록 돕는 것이 한국 종교인의 역할이 아닐까?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면체적인 공동체 모델을 제시한다. 이와 반대되는 모델은 미끈한 공 형태의 구(毬)형이다. 여기에는 모든 점이 중심에서 똑 같은 거리에 있어야 하며 그들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도 용납되지 않는다(〈복음의 기쁨〉 182쪽).

그러나 다면체의 모델은 각 부분이 모여진 집합으로 각자는 고유성을 간직하고 각각의 것을 공유한다.

거기에는 가난한 이들과 그들의 열망, 문화와 잠재력을 위한 공간도 존재한다. 여기에서 본인은 우리사회의 화두인 소통의 문제 해결을 위한 열쇠를 본다, 즉 다양함 안에 신명 나게 하나 되는 생명공동체이다. 이를 위해 종교계는 서로 소통하고, 풍요롭게 되어, 이 시대의 정치인과 국민 사이에, 기업과 국민들 사이에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쓴 소리,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용기를 갖추어야 될 것이다.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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